사이버캠퍼스와 화벽(畵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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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캠퍼스와 화벽(畵壁)
  • 박소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비교문학
  • 승인 2020.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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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어느새 학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학기 초 ‘코로나19’로 우왕좌왕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큰 무리 없이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것에 한없이 안도하게 된다. 그러나 학기 내내 유령마을이라도 된 듯 텅 빈 대학 캠퍼스 풍경은 마치 악몽 속의 어떤 장소처럼 생경하기 그지없다. 돌이켜보니 대학 시절부터 교수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십 년 동안 거의 매일 대학 캠퍼스를 드나들면서 지금처럼 텅 빈 캠퍼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캠퍼스는 상아탑 같은 폐쇄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아고라를 닮은 열린 공간을 추구해왔고, 단순히 정적인 배움의 공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열띤 토론과 집회의 공간이자 축제의 공간이기도 했었다. 꽃 같은 이십 대 젊은이들이 뿜어대는 시끌벅적한 활기와 혼란으로 가득 찼던 캠퍼스가 학기 내내 무거운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 덕분에 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강의에, 학생 면담에, 교수회의, 세미나, 학술회의 등 줄줄이 이어지는 온갖 회의로 제구실을 못 했던 연구실에서 오롯이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나 회의를 하다 보니, 학기 초나 축제 때마다 먼지와 소음으로 앓곤 하던 두통마저 그리울 정도다.

지겨울 만큼 익숙하던 공간이 이토록 생경하게 돌변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학기 내내 텅 빈 캠퍼스에 올 때마다 ‘좀비 랜드’를 방문한 듯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지만, 벌써 ‘포스트-코로나’를 이야기할 만큼 이제는 다들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바이러스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격리와 고립을 택하도록 만들었지만, 인간의 모든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시킨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인간은 물리적 공간 대신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그곳에서 소통하고 대화를 지속한다. 집이나 연구실처럼 나만의 사적인 공간은 이제 더는 고립된 섬이 아니다. 사적인 공간의 공고한 벽 너머 사이버 강의실이나 회의실, 심지어 사이버 카페와 게임 룸처럼 무수한 가상공간이 개방되어 무한대로 확장된다. 물리적 공적 공간을 폐쇄할 수밖에 없게 되자 그동안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던 가상공간이 오히려 활짝 열린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 사이버 강의실에서 『장자(莊子)』와 중국 포송령(浦松齡, 1640-1715)의 『요재지이(聊齋志异)』를 강의했다. 원래는 『논어(論語)』부터 읽곤 했지만,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공자(孔子)를 가르치기엔 포송령의 말대로 우리의 현실이 꿈보다 더 괴상했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인식의 한계에 갇힌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 장자는 한번 날면 그 날개가 온 하늘을 덮을 만큼 컸다는 붕(鵬)새를 화두로 인식 저편을 한가로이 거닐며[소요유(逍遙遊)],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가리켜 장자의 꿈속에 나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나비의 꿈속에 장자가 있었던 것인지를 물었으니, 마치 현재의 우리를 예견한 듯한 장자 사상의 오묘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비정상(abnormal)이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된 지금, 포송령의 이야기는 어떤 판타지 영화보다도 핍진하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기괴한 일상으로 가득 찬 『요재지이』에 「화벽(畵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친구와 절에 놀러 간 어떤 서생이 불당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탱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벽화 속에서 서생은 아름다운 소녀와 사랑에 빠져 꿈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신장(神將)이 나타나자 그런 달콤한 쾌락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소녀는 서생을 침상 밑 좁은 공간에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 달아나버린다. 서생이 숨 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소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망각한다. 벽화 밖에서 절의 노승이 서생을 소리쳐 부르자 그제야 서생은 벽화 바깥의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서생은 벽화 속의 신비로운 공간에서 꿈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벽화 속에도 또 다른 벽이 존재한다. 소녀는 벽 속의 벽을 통해 또 다른 공간으로 달아나지만, 서생은 벽 속에 갇혀 벽 바깥의 현실조차 잊어버린다. 이 이야기의 화벽처럼 벽 너머의 사이버 공간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무한히 펼쳐질 듯하지만, 여전히 인식의 한계에 갇히는 한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신비롭고 미묘한 알레고리로 가득 찬 이야기는 우리의 사이버 강의실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지만, 학생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가 처한 딜레마라고나 할까? 사이버 공간이 고립된 개인을 불러내어 물리적 거리보다도 멀기만 한 심리적 거리를 없애고 무한한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만 있다면 (물론, 쉽지 않겠지만), 이 위기상황은 오히려 인류에게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기(轉機)를 제공한 셈이 되리라.    


박소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비교문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중문과에서 석사, 미국 미시건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서 한·중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지 Sungkyun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부편집장(Associate Editor)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검안과 근대 한국사회』(공저), 『조선후기 법률문화 연구』(공저), 『동아시아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등이 있으며, 『능지처참』, 『당음비사』 등 역서와 “A Court Case of Frog and Snake: Rereading Korean Court Case Fiction from the Law and Literature Perspective”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에게서 영감을 받아 동아시아 고전문학 속의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탐색하는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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