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의식’의 놀라운 반전…의식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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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의식’의 놀라운 반전…의식의 기원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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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 서평_『의식의 기원(옛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제1권』(줄리언 제인스, 김득룡, 박주용 역, 연암서가, 2017.06.20.)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떠들며 방해를 한다면, 집중력은 흐트러진다. 다른 것을 의식하면서 나의 몰입감은 저하된다. 이처럼 무언가를 의식한다는 건 사유의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이 있어야만 사유를 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강의했던 저자 줄리언 제인스는 철학, 문학, 인류학, 역사학, 심리학, 신경과학, 생물학, 언어학 등을 분석하며 ‘의식’에 대한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의식의 기원』에 나타난 그의 여정은 우선 기존의 의식에 대한 정의들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의식은 사유와 다르다. 사유가 기억, 추론, 은유, 반응, 몰입 등의 차원이라면 의식은 내가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차원이다. 의식은 사유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게 줄리안의 입장이다. 눈을 감고 무게가 다름을 판단하는 간단한 실험을 제시하며, 저자 줄리안은 판단의 사유가 원지시를 따르는 자동과정이며, 그 자기지시가 조작을 가하는 재료라고 설명했다. 의식의 핵심이라고 간주해온 사유라는 건 사유과정 속에서 전혀 의식되지 않고, 심지어 아인슈타인 등 천재들이 보여준 놀라운 사유과정 역시 의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의식에 표상되지 않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

철학에서 대표적인 의식에 대한 설명은 데카르트로부터 비롯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제 1명제로 의식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인스는 6만 밀리세컨드라는 1분 동안 의식이 계속 흐르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뉴런의 점화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점화가 어떻게 쉴 새 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느냐는 비판이다. 또한 뉴런은 점화를 일으키지 않는 불응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데카르트의 의식의 지속성은 부인된다.

비 오는 날, 차가 옆으로 쌩 지나며 물을 튀겨 맞은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마침 비가 오며 차가 지나간다면 이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이건 의식적인가, 비의식적인가? 제인스에 따르면, 이런 사례들은 개별 사례들에서 추리 또는 단순히 일반화한 것에 근거를 둔 기대일 뿐이다. 모든 고등 척추동물은 추리와 일반화의 역량을 신경계의 구조로서 공통으로 갖고 있다. 의식의 구조가 아니다. 과연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과 반응은 분명 다르다. 반응은 자극과 관련되며,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동안 반응은 아주 가끔씩만 의식된다. 반응은 행동과 뉴런의 점화와 연결 등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의식은 그렇지 않다. 의식이 시간상, 공간상 언제나 어디에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감각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 당장 나는 내 뒤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기존의 경험들에 비추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추론하는 것뿐이다. 만약 이 설명이 맞는다면, 존 로크의 경험론인 ‘타뷸라 라사(tabula rasa)’ 역시 비판 가능하다. 왜냐하면 의식은 경험의 전적(全的)인 복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회상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거대한 인식의 바다에 비하면 한 톨의 모래알인 것이다.”-55쪽.  

그동안 모든 학문적 결론은 의식이 특정한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허나 실제로 의식의 처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의식의 기원』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의식’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 1920년 2월 27일 - 1997년 11월 21일)
▲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 1920년 2월 27일 - 1997년 11월 21일)

저자 줄리언은 ▷ 물질의 속성으로서의 의식 ▷ 원형질의 속성으로서의 의식 ▷ 학습으로서의 의식 ▷ 형이상학적 불가피성으로서의 의식 ▷ 단순한 구경꾼 이론 ▷ 창발적 진화 ▷ 행동주의를 비판하고,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망상활성화 체계로서의 의식’을 소개하며, 가장 그럴싸하다고 밝혔다. 신경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서 망상체는 중앙교환 중추 역할을 한다. 감각계와 운동계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망상체 역시 인간의 의식을 설명해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심리현상은 모두 신경해부학과 화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제 제인스는 언어를 관찰한다. 『의식의 기원』 첫 장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의식은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언어는 유한하지만 은유를 통해 무한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의식은 언어의 은유와 같은 창조인데, 의식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건 이 은유를 시도하면서 발생한 것들이다. 제인스는 의식의 특징으로 ▶ 통시성에서 공시성으로 변하는 공간화 : 의식은 언제나 공간으로서만 가능하다 ▶ 발췌 ▶ 유사 ‘나’ ▶ 은유로서의 ‘나’ ▶ 이야기 엮기 ▶ 조정 : 이전 경험으로의 의식화된 동화 혹은 양립화나 조화 등을 언급했다.

신경학적 분석과 구술, 문헌으로 밝혀지는 의식의 기원

이제껏 의식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의식이 아니라면, 과연 정말 의식은 무엇인가? 자살을 하거나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경우에 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의식’, ‘의식적’, ‘무의식’은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여기서 제인스는 엄청난 반전을 선사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나 뇌가 손상된 피험자들을 통해 그가 알아낸 건 인간이 바로 양원적 뇌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 뇌의 좌반구는 인간의 언어를 담당하고, 우반구는 신의 언어를 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신’이라는 건 문화적 총체로서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형성한다. 제인스는 “신은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명령이 섞여 만들어진, 교훈적 경험의 혼합물”(156쪽)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였으며, 그 목소리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신의 목소리는 인간의 내부에서 책임 있는 자아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신적 위치에 올려놓게 된다. 이런 자아의 창조가 바로 문화의 산물이라는 게 제인스의 주장이다. 신의 목소리는 신경학적 명령의 속성을 갖추고 인간의 의지가 된다. 이 명령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바로 복종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식이라는 건 언제나 어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내가 급한 상황에서도 무단횡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건 교훈적 경험의 혼합물로서 나에게 의식된다.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나의 의지를 만들어내며 행동으로 이어진다. 

제인스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는 세 측면을 이룬다. 첫째, 피험자 혹은 환자들의 구술을 통해 분석한 바이다. 인터뷰나 사례 분석을 통해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신빙성 있는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인 『일리아스』 문헌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 당시 모든 왕국은 신정정치로 통치했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 혼자 쓴 저작이 아니며, 여러 사람들의 구술로 이어져 내려왔다. 『일리아스』를 보면, 인물들은 신들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했다. 모든 인물들은 새로운 선택과 결정의 스트레스를 목소리를 들으며 해소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환각을 듣는 것은 그들의 스트레스 역치가 낮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누군가(왕들)의 죽음으로도 나타났다.

셋째, 뇌의 영역을 분석하며 신의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뇌의 좌반구, 우반구 모두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 우반구의 베르니케 영역이 신의 목소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 인간 뇌의 두 반구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 인지기능에서 두 반구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차이를 반영한다. ▶ 뇌는 환경에 따라 조직화될 수 있고(뇌의 가소성), 학습과 문화에 근거를 둔 양원적 인간에서 의식적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인간 뇌의 좌반구는 언어적이고 분석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반면, 우반구는 제인스의 설명에 따르면, 문명의 경험들을 분류하고 패턴으로 짜 맞추어 인간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즉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일리아스』, 구약성서, 고대문학들의 신들의 대사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문화적 총체로서 경험들을 분류하고 범주화 해, 은유라는 고차원적인 종합으로 인간의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류는 사회통제 양식으로서 양원적 정신(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명과 문화가 쌓이면서 언어를 발달시키면서 신의 목소리를 담당하던 영역이 의식으로 진화했다. 이 단계가 바로 언어진화다. 문명의 기원을 살펴보면, 더욱 더 사회통제와 양원적 정신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리 생활에서 마을을 형성해가던 인류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통치하기 위해 환각적 음성을 듣도록 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이 바로 ‘이름’의 발명이다. 이름은 족장이나 왕들이 죽어도 계속해서 환각을 듣도록 한다.

문명이 계승되고, 인류가 계속 진화하기 위해선 이전 왕들의 가르침을 목소리로 새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한 증명은 『의식의 기원 제2권, 제3권』에서 역사와 현대세계를 분석하며 이어진다. 다음에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의식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과학철학이 직면했던 인간 심리와 행동 이해에 대한 어려움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지 모른다.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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