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가리키는 말, 말, 말...야크(yak), 예티(yeti), 조(d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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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가리키는 말, 말, 말...야크(yak), 예티(yeti), 조(dzo)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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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17)_소를 가리키는 말, 말, 말.

내가 야크(yak)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건 1989년 여름 네팔에 갔다가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호텔 <Yak & Yeti>에서 며칠 묵은 덕분이다. 야크는 해발 고도 3천 미터 안팎의 고지대에 서식하는 털이 긴 야생소다. 그리고 예티는 히말라야 산맥 산자락 어딘가에 숨어 산다는 전설상의 雪人을 말한다.
 
그런데 이 야크소와 일반 암소와의 교배로 태어난 혼종이 있는데, 티베트어로 조(dzo, zo, zho, dzho)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놈을 조라 부르고 암컷은 조모(dzomo)나 좀(zhom)이라고 한다. 야크나 다른 가축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고산지대 가파르고 험한 산길에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데 최적격자다. 이는 마치 말과 나귀의 이종교배로 체구는 작지만 힘이 센 노새가 태어나고, 사자와 호랑이의 혼혈로 라이언이 생겨난 것과 같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이상한 점은, 이종교배로 태어난 짐승은 번식능력이 없다고 배웠는데, 야크와의 이종교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2대, 3대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결론은 이종교배의 산물 중에서 조모는 번식능력이 있는데 비해 수놈 조는 생산능력이 없다. 이종교배 과정에서 수놈 조는 슬픈 존재다.
 

▲ 몸의 털이 길고 다리가 짧은 것이 특징인 야크는 얼핏 황소처럼 보인다.
▲ 몸의 털이 길고 다리가 짧은 것이 특징인 야크는 얼핏 황소처럼 보인다.

조를 몽골어로는 카이낙(khainag), 영어 혼성어로는 야크(yak)와 cattle을 합쳐 만든 야틀(yattle) 또는 yak와 cow를 결합해 만든 야카우(yakow)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카이낙(조 암놈인 조모)과 일반 황소나 야크 수소와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혼종은 3/4혼혈이라는 뜻의 오르토옴(ortoom)이라 부르고, 다시 또 오르토옴과 황소나 야크 수놈과의 이종교배로 생긴 혼종은 1/8잡종이라는 의미의 말 우산 귀제(usan güzee)라고 부른다. 유목사회에서는 사람 간에도 이런 혼성이 지극히 흔했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혼혈 짐승 dzo의 발음이 [조]~[소]로 교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티베트어 dzo의 발음이 우리말 소를 길게 끄는 발음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토번(吐蕃, Tǔbō 즉 티베트족)은 강족(羌族, 창족)과 번족(蕃族, Bo족) 두 민족 간의 혈연적 융합의 하이브리드다. 토번(吐藩, Tǔbō)은 중국 사서의 기록이고, 이 말이 서양으로 전해지면서 티베트(Tibet)가 된 것이다. 『번한대조동양지도(蕃漢對照東洋地圖)』에 의하면 토번(吐蕃)의 자칭은 Po다. 『범어잡명(梵語雜名)』에는 토번이 부타(Bhuta)라고 기록되어 있다.
 

▲ 네팔 중부 안나푸르나 봉 주변에서 촬영한 야크의 모습.
▲ 네팔 중부 안나푸르나 봉 주변에서 촬영한 야크의 모습.

원치 않는 족속 간 혼거와 혼혈 이전 원 티베트인 스스로는 자신들을 농사꾼 내지 농업인이라는 뜻으로 뵈파(博巴)라고 불렀는데, 필경 유목민인 강족을 조파(卓巴, Dzopa or Dropa)라고 불러 저들과 차별을 두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토번(吐藩)에서의 ‘번(蕃)’은 ‘농업’을 뜻하는 ‘박(博, 뵈)’과 발음이 같다. 그러니까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던 선주민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뵈파라고 불렀고, 조를 몰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는 산악인들을 조파(소몰이꾼)이라고 비하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농사를 생업으로 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야크나 혼혈종 조의 등에 물자를 싣고 이동생활을 하는 소몰이 집단이 야만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고산지대에 오르는 짐 운반용 들소 조(dzo).
▲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고산지대에 오르는 짐 운반용 들소 조(dzo).

세월이 한참 지나 So/Sog은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모우강(牦牛羌)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모우(牦牛) 즉, 야크소를 기르며 사는 강족(羌族)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티베트인들에게 so는 야크에 다름 아니었다. 13세기가 되어 몽골인들이 과거 모우강의 땅에 들어왔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을 문명과 세련됨의 표준으로 삼고 북쪽의 몽골을 야만인, 오랑캐의 땅이라는 뜻에서 So(의 땅)라고 비하해 불렀다.

오늘날 티베트 동남부에 위치한 바얀카라(巴顔喀拉: ‘풍요롭고 검다’는 뜻)산 이남 지역 강파(康巴, 캄파)들이 사는 강(康, 캄)방언 지역에서는 일반 소(牛)를 so라 부른다. 그리고 기련산과 바얀카라(巴顔喀拉)산 사이 청해호(靑海湖, 칭하이후) 주변과 하서회랑 일대의 티베트 북부 안다방언 지역에서는 소를 sog(~sok)라고 한다. 우리말 소와 티베트어 소(~조) 사이에는 어떤 친연성이 있을까?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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