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을 다시 누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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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을 다시 누리려면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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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규용의 행림방담(杏林放談)

얼마 전 한 유명 가수가 “코로나19로 마음이 복잡한 날들, 희망을 꿈꾸며” 만들었다는 노래를 올렸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런 내용이다. 아마 우리 모두 같은 염원과 희망일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 이후가 달라진다 해도 이처럼 다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두기와 언택트가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정부당국의 지침과 미래학자들의 예측은 우리를 암울하게 한다. 앞으로의 정책들도 그런 예측에 기초할 것이고, 당장 질병관리본부도 질병관리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하기야 이런 예측과 대응은 바이러스지식을 배운 현대인에게 이미 상식이기에 무리는 없다. 문제는 컨택트하려는 염원과의 충돌이다.

이런 충돌과 모순은 사실 본질적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피하거나 죽여야 하는 존재이고 인간이 운반자로 규정되는 지식과 논리체계에서 우린 반드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린 다시 가까워져야만 한다. 이 이율배반관계가 필연이라면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건강을 희생해야 한다. 과연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다시 전처럼 어울려 살 방법은 없는가?

인간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의식과 자아를 형성・유지하기 위해서도 환경과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물론 전자는 자연환경이고 후자는 사회환경이다. 현대가 아무리 자연조건을 극복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여전히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식단과 기후조건은 건강과 질병 및 사회활동에서의 의식・감정적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토인비의 문명사관, 지리의학적 관점들이 그러하고, 더구나 근래에 나온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은 그 영향력을 국가로까지 확대한 결정판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똑똑하고 능동적인 주체(sapiens)인 만큼, 어쩌면 훨씬 더 적응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존재’(Homo ambiens)이기도 하다.

그럼 자연환경이란 무엇일까? 산, 강, 호수, 바다, 늪지, 기후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연상들은 마치 이데아와 같은 관념일 뿐이고 현실은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와 세균, 미생물과 동식물들이 만드는 산이고 강이다. 즉 바이러스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환경 자체이다. 인간은 수정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연의 영양과 대기환경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는데, 굳이 마이크로바이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바이러스는 늘 우리 안팎에 함께 있는 셈이다. 야생자연의 파괴로 인해 서식환경이 다른 박쥐나 천산갑이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하였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환경조건이 변화하여 생긴 병인 셈이다.

그렇지만 반생명이라는 바이러스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각자 자기 자리에 있으면서 균형을 이룰 때는 결코 적이 아니며 자연의 경이를 선물한다. 그런 점에서 동정된 개별 바이러스를 골라서 적대하고 죽이려는 대책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적지 않으려니와 자신이 의존하는 환경과의 싸움이라 결국 성공하기 어렵다.

그럼 방법은 무엇인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외부의 자연환경 복원은 의학적 대상이 아니므로 환경정책에 맡기고, 의사는 인체 내부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하거나 바이러스와 접촉하는 세포점막, 즉 바이러스의 체내적응환경을 변경시킬 수 있다. 우한(武漢)은 역사적으로 형초(荊楚)지역이라 하여 남쪽이지만 산이 깊고 장강을 끼고 호수도 많아서 기후다양성이 큰 곳이다. 이름부터 전쟁, 가시, 고초라 범상치 않다. 성군인 순임금과 적대하여 쫓겨났던 ‘삼묘(三苗)’부터 당대의 아웃사이더들인 노자와 굴원, 항우를 떠올리니 더욱 그러하다. 어쨌든 기후배경이 코로나감염증의 초기 임상특징에 반영되었고, 각 성시(省市)별로 작성한 중의학 진료지침과 개판(改版) 시기별로 다양하게 변화된 처방들을 보면 자연・기후환경이 감염병 양상의 변화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을 알 수 있다.

▲ 자연(바이러스) 자체의 시공간적 역동성과 생명체 내환경조절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환경의학적 치료의 증거인 달원음.
▲ 자연(바이러스) 자체의 시공간적 역동성과 생명체 내환경조절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환경의학적 치료의 증거인 달원음.

한겨울의 춥고 눅눅한 날씨와 매실이 익어 수확하는 요즘 날씨에 치료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고 보는 것이 환경의학의 이론적 전제이다. 중의학의 치료경험을 보면 마행의감탕과 곽향정기산, 달원음, 은교산 등이 다양하게 응용되는데, 이런 점이 한약의 무의미성이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자연(바이러스) 자체의 시공간적 역동성과 생명체 내환경조절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환경의학적 치료의 증거이다.

한의학에서는 자연환경의 기후조건을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의 6가지로 나누며 동식물과 인체 내환경도 역시 그러하다고 본다. 습지에 사는 식물들이 수분을 조절하고 산소를 이용하기 위해 통기성 조직을 갖추어 생리적 적응을 하면서 구조와 기능이 형성되듯이 생명체의 생물학적 특성은 환경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인체의 내환경은 산염기평형이나 세포내외의 체액과 노폐물, 체온, 신경・호르몬신호 등이 상호작용하며 조절되는데, 그 목적과 결과는 물론 자연의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이다. 외환경을 인식하는 기구는 신경・화학적 감수기이고, 외부 이물로 자극된 내부를 복구하여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기구가 면역계이다.

▲ 기후조건을 나타낸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
▲ 기후조건을 나타낸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

한약재를 조합하여 처방하는 원리도 서식환경에 적응하며 형성된 식물의 구조・기능적 생리활성을 이용하여 인체의 내환경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한의학이 체내환경을 6가지(실제로는 더 복잡하다)로 요약하고 한약을 써서 치료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논리적 추론절차에 근거한 것이다. 마황탕과 청룡탕 및 패독산을 비롯한 많은 감염병 처방이 그러하나, 여기서는 좀 특수한 달원음을 예로 들어본다. 처방을 만든 우여우커는 독특하게 당시의 역병이 단순한 환경변화를 넘어서 특정한 물질이 변화하여 생긴 병원체(異氣)임과 이를 치료하는 약물이 단일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른바 ‘질적 변화’라 할 수 있는데, 처방 중의 빈랑 후박 초과 지모 황금 등은 습・열・조를 조절하고 체액을 보충하며 노폐물(穢濁)을 제거하여 세포내환경 및 전신대사기능을 복원한다.

이런 내환경변화를 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예컨대 LPS모델쥐의 조직염증에서 보체(C3, C5a)활성을 억제하고 염증촉진성 TNF-α、IL-6、IL-1β 등은 낮추고 억제성인자인 IL-10은 올려서 급성 폐손상과 부종을 제거한다든가, 토끼의 출혈열과 독감바이러스발열모델에서는 PGE2와 cAMP함량을 복구하여 해열、항바이러스 작용으로 나타난다. 다른 약리실험에서도 장연동과 폐염흡수촉진 및 양호한 항바이러스작용이 있어 체내독소배설、항염、이담 및 간위보호、혈액계통과 폐손상 회복을 촉진했다 하며, 839종의 화학성분들에 대한 CD36、CCL3、CFTR 등의 약리학적 타겟과 칼슘・hippo신호경로, 보체와 혈액응고기작, ABC운반단백 등도 밝혔다 한다. 사실 이런 치료기전은 모델・케이스 의존적이어서 참고자료일 뿐이며, 본질적인 치료목표는 병원체로 인해 변조된 내환경을 개인의 연령・성별・섭생・이환질병・체질조건에 맞게 복원하는데 있다.

이런 내환경 조절방법은 잠복기 확진단계에서도 작용하기 때문에 예방적 한약투여의 가성비가 가장 좋다. 이는 상호접근의 위험성과 집단면역에 이르는 문턱을 낮추어 이율배반을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한의사의 의료봉사 배제사태에서 본 것처럼, 숙련된 전문가일수록 심하게 나타나는 확증편향의 극복이다. 완벽하게 실패하지 않는 한, 바이러스학이 확고하게 정립한 시각과 분석프리즘을 버리고 이질적인 접근방법을 허용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백신을 만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실패하더라도 변이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그렇다면 보건정책담당자와 의료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판단에 기대야 하지만, 심리적으로 보다 큰 권위와 상식에 근거하여 불안을 회피하려는 일반적 습성에 비추어 볼 때 역시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것들’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는, 익숙한 지식체계와 그 연장에서 파생된 작금의 문제에 대해 처음의 발생 지점부터 과학적 추론규칙을 적용하여 면밀히 검토하면서 친환경적인 해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가 서로 멀어지게 된 것은 인간의 업보이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죄가 아니고, 환경성 질병은 결국 환경을 복원해야 근본적인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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