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절반, '전공-직업 미스매치'…"대학 정원 규제 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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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 절반, '전공-직업 미스매치'…"대학 정원 규제 완화해야"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6.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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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 ‘전공-직업 불일치’ OECD 국가 중 ‘최악’
신산업 전공 분야 증대 등 대학 정원 규제 완화해야
KDI “진로교육 강화, 학생 전공선택 시기 유연성 필요”

한국 대졸자의 절반은 대학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미스매치(불일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를 개선하려면 대학의 정원 규제를 완화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 시점을 유연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전공 선택의 제약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다. 직업의 세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전공·직업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교육개혁의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졸자 '전공-직업 미스매치' 50% 달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문대졸 이상 25~34세 임금근로자 중 50%는 전공과 직업이 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된 OECD 국가 전체의 평균 39.1%를 크게 웃돌았으며, 이는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15개국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농학(85.9%), 자연(84%), 인문(72.9%) 분야 전공자의 미스매치 비율이 높았으며, 사회(26.3%), 서비스(22.9%) 분야의 미스매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자료제공=KDI)

보고서는 고교 졸업자 7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2019년 기준 미취업자로 머무르는 비중이 대졸자 전체의 26.8%에 달하는 등 졸업 이후에는 심각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요셉 연구위원은 “여러 이유로 수도권 소재 대학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보다 상위에 속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원하는 전공을 포기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이는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는 물론 혁신 선도 인재 양성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 대학·전공 등 각종 정원 규제 '심각'

보고서는 이러한 미스매치의 원인으로 ▲대학·전공에 관한 정원 규제 ▲노동시장에 관한 불충분한 정보 ▲전공 선택 시기의 획일성을 들었다.

KDI는 수도권 대학에 대한 총량적 정원 규제가 전공별 정원조정의 중요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부분적으로라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 수도권 지역의 인구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총량적 정원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전체 정원이 대학 측 희망보다 낮은 수준에서 고정되기 때문에 설령 대학 차원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해도 큰 폭의 조정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 현실적으로 정원이 증가하는 학과와 감소하는 학과 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이 발생하기 쉽다고 했다.

KDI는 보건·교육 등 특수전공에 대한 정원 규제도 전공 선택의 쏠림 현상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특수 전공 정원 규제는 관련 직업군에 대한 진입 규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컨대 의료인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하는 자격이나 면허를 소지해야 하며, 자격ㆍ면허 시험 응시자격에는 관련 분야 전공자 여부가 명시된다. 이와 같은 이중의 진입 규제는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을 관리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해당 전공자의 소득 및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자료제공=KDI)
(자료제공=KDI)

전공별 정원 규제 및 자격ㆍ면허 시험의 관련 분야 전공자 요건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제한이 정당화되고 있는 이유는 해당 직업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우수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이나 취업률에서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큰 격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한편으로 쏠리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ㆍ공학 계열의 적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때문에 의대를 선택하거나, 인문ㆍ사회 계열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안정성 때문에 교대를 선택하는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노동시장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가 획일적이라는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혔다.

(자료제공=KDI)
(자료제공=KDI)

KDI가 2018년 대학 신입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신입생의 비중은 28.2%에 달했다. 신입생 10명 중 3명은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전공 계열별로는 인문, 자연, 사회, 공학 계열 순으로 변경 희망자의 비중이 높았고, 인문계열의 경우 주로 교육계열로, 자연계열의 경우 의약계열로의 변경을 희망했다. 사회 및 공학 계열의 경우에는 대체로 같은 계열 내 다른 전공으로의 변경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현재 상당수의 대학에서 사회ㆍ공학 계열의 모집단위가 학과나 학부 단위로 세분화되어 있는 점과 사회ㆍ공학 계열의 세부전공별 차이를 입학 이전에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고 내 문ㆍ이과 선택에 대한 후회 여부 역시 현재의 전공 변경 가능성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관찰된다. 일반고 학생들의 문·이과 선택 이유 중 ‘대학 진학에 유리해서’가 14.6%, ‘주위의 일반적인 선택을 따라서’가 6.3%로 전체의 20%를 넘었다. '대학 진학에 유리해서'라고 답한 학생의 후회비율은 36.9%, '주위 일반적인 선택을 따라서'라고 답한 학생의 후회비율은 46.1%로 두드러지게 높았다.

◆ "정원 재검토 및 전공 선택 자유 확대해야"

KDI는 높은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으로 기존 정원규제 자체를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전면적 해제는 어렵더라도 신산업 관련 전공 분야의 정원은 총량적 정원 규제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논의되고 있는 AI 대학원이나 소프트웨어 학과의 개설에 있어서도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우수교원을 유치하고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인력 양성과 적절한 보상 유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정부에서 직접 통제하고 있는 보건이나 교육과 같은 특수 전공의 경우 사회 전반적인 시각에서 정원의 적절성을 정기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의료 분야의 경우 증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수요가 축소되고 있는 교육 분야는 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면밀히 검토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로교육의 경우에는 △진로 탐색시간 의무화 △학교 당 진로전담교사 추가 배치 △진학・진로 상담 시 대학・학과별 취업률 외 소득정보 추가 등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전공 선택의 시기를 다양화하고 전공 선택 및 변경의 자유를 확대하는 등 유연성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로를 일찍 결정한 학생들에게는 해당 분야의 심화교육이 필요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일반 교육과 함께 광범위한 진로 탐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연구위원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충분한 탐색을 거쳐 전공을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모집단위를 현재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대학 자율성의 원칙하에서 각 대학이 내부논의를 통해 전공별 정원의 제약을 축소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도록 유인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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