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가 된 80/90년대 나의 강단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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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기회’가 된 80/90년대 나의 강단 시절
  • 이기상 한국외국어대·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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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1984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에 들어와서 2012년에 정년을 맞이하고, 명예교수로 3년 더 강의를 했으니, 30년을 대학 강단에서 지낸 셈이다. 그 30년도 무섭게 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싶었는데, 요즘의 변화에 비하면 변화도 아니다. 그 변화의 세월을 회고하며 그때는 무엇이 귀중했고, 무엇이 보람을 안겨주었는지 되새겨 본다.

요즘은 대학교수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물론 몇몇의 다이아몬드족은 예외이겠지만 말이다. 80년대는 많은 대학들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교수채용을 늘리고 있었다. 석사학위만으로 교수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시절이었기에 독일 뮌헨서 하이데거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독일 뮌헨으로 연구년을 지내러 오신 철학과 원로교수의 눈에 띈 나는, 그 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학위를 받자마자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로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겠다.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하나였다.

나는 본래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으로 유학 나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석사과정만을 마치며 신학공부를 접고, 철학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온 것이다. 그래서 소위 ‘전과생(전공학과를 바꾼 사람)’이었다. 뮌헨서 같이 지내며 좀 친해진 유학 후배들이 내 걱정을 해주며 하는 말이다. “선배님은 과를 바꾸셔서 귀국하면 학교 자리 잡기가 쉽지 않겠어요.” 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한데, 나는 철학분야에 아는 사람이라곤 없으니, 강의 달라고 부탁할 사람 하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고 오직 공부가 좋아서 하고 있다”고. “갈 곳이 없으면 번역하면서 살 것”이라고. 내가 외대 철학과에 갔다고 들은 그 후배는 내가 철학과 원로교수에게 자동차 한 대를 사서 드렸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한다.

강의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독일어로 철학을 시작해서 독일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던 나였기에, 우리말로 강의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알게 모르게 자꾸 독일어 개념들이 튀어나오니 난감했다. 그래서 강의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야 했다. 강의노트를 마련해서 해야 할 내용들을 빼곡히 써내려 갔다. 80년대 초반에는 강의에 쓸 만한 교재도 없었다. 그러니 독일어책들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려서 우리말로 옮기면서 우리말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준비를 했다. 이러한 강의방식이 몸에 익어 ‘강의록’을 준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울러 독일어 교재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낸 책이 <실존철학>, <철학교육>, <철학의 뒤안길>, <종교와 철학>, <주제별 철학강의>, <하이데거 철학에의 안내> 등이다. 필요(Not)가 거기에 대응하는 필요성과 필연성(Notwendigkeit)으로 처신하게 만든다.

대학원 강의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독일에서 하이데거 철학으로 학위를 하고 온 최초의 사람이라는 소문이 조금씩 퍼져, 대학원생들을 위한 별도의 ‘원서강독’에 많은 외부학생들이 청강생으로 모여들었다. <존재와 시간>을 비롯해 하이데거의 원전들을 개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같이 읽으며, 설명하고 토론하였다. 내 박사학위 논문도 복사해서 나눠 갖고 그것도 같이 강독을 했다. 그러면서 그것도 번역을 준비했다. 그래서 출간된 책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이다.

하이데거 전집 24권인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그리고 <존재와 시간>도 번역해서 출간했다. 그리고 어렵기로 유명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전향>은 독일어 원전을 포함한 ‘한독 대역본’으로 출간하였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강독에 참석했던 제자들과 타 대학 대학원생들이 함께 읽으며 질문하고 대답하는 토론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들이다.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으로 <열암학술상>을 수상하고, 한독 대역본으로 출간된 <기술과 전향>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며 필요에 대응한 응전에 대한 시대의 보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같이 시대의 어려움을 헤쳐 온 제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강의를 수강한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제자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린다. 예전과 같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고 제자가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강의실에 오면 녹음기로 강의를 녹음하며, 노트북으로 자기 할 일 하면서 강의는 듣지도 않는다고, 달라진 강의실 분위기를 전한다. 눈앞에 닥친 진리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위기’를 보며, 학구열에 불타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이기상 한국외국어대·철학과 명예교수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명예교수.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우리사상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다석과 함께 여는 우리말 철학』, 『소통과 공감의 문화콘텐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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