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文史哲) 인문학을 넘어 뉴리버럴아츠(New Liberal Arts)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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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文史哲) 인문학을 넘어 뉴리버럴아츠(New Liberal Arts)를 제안한다
  •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철학
  • 승인 2020.06.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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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첨단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을 빼앗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적 활동을 상당 부분 대체해가고 있으며, 로봇 기술과 결합하여 육체노동마저도 잠식해가고 있다. 일거리와 일자리의 조건이 급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교육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20세기와 같은 교육 프레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런 조건에서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인공지능이 하지 못 하는 일은 무엇일까? 실용성이라는 말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실용적 앎이란 오늘날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다시 말해, 무엇을 알아야 삶에 유익한 것일까? 창의성은 어떻게 배양될 수 있을까? 또 자유 시민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시점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어야 할까? 특히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미래의 세계 시민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앎의 현장에서 가장 긴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물음들이라고 진단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전통적인 문사철(文史哲) 중심의 ‘인문학(Humanities)’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인문학을 규정하는 관용어 중 하나는 ‘비판’ 또는 ‘비판적 사고’이다. 그러나 수학과 자연과학은 물론 예술과 사회과학 분과들도 충분히 비판적 실천을 한다는 점에서, 이 특징은 인문학만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비판(critique)’의 어원은 ‘체로 친다’는 뜻의 희랍어 크리네인(krinein)이다. 크리네인은 의학적 의미에서 ‘병의 전기(轉期)’라는 뜻의 ‘위기(crisis)’의 어원이기도 하다. 비판은 학문(philosophia)의 탄생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근대 ‘자연과학’에서 숙성했고 꽃을 피웠다. 자연과학의 정신은 생생한 경험과 직관에 반대되더라도 세계를 ‘체로 걸러’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종교와 미신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원동력이었다. 근대 학문은 바로 이 자연과학의 활동을 중요한 뿌리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칸트도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잘 지적했듯이, 위기를 직시하며 무릅쓸 수 있는 용기와 자유로운 정신, 비판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로마에서 자유 시민이 갖춰야 할 소양으로 여겨졌던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 즉 리버럴아츠(Liberal Arts)야말로 새로운 시대 조건에서 전통적 인문학을 확장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아르테스 리베랄레스의 삼학(trivium)을 이루는 ‘문법, 논리학, 수사학’은 대체로 인문학에 대응하지만, 사과(quadrivium)를 이루는 ‘산술, 지리, 음악, 천문학’은 좁은 의미의 인문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사과는 ‘수학, 자연과학, 예술, 공학, 사회과학’을 망라한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리버럴아츠 전통을 갱신해서 ‘뉴리버럴아츠(new Liberal Arts)’를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아르테스 리베랄레스는 ‘자유시민소양’이라는 내포를 갖지만, 근래에는 ‘자유학예(自由學藝)’라고도 번역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대학제도가 설립되던 초기에 ‘문리대학’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뉴리버럴아츠를 ‘새 문리학(文理學)’이라는 명칭으로 옮길 수도 있음에 착안했다. 이러한 해체와 대체는 학문 체계 전반의 해체와 재구성을 뜻함과 동시에, 현시대의 학문이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다. 또한 교육체계와 대학제도는 시대에 맞게 재편되어야 한다. 이것이 학문의 시대적 사명이다.

고대 서양에서 자유시민소양은 공적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자유로운 인간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이론적 실용적 소양이다. 이런 소양이 오늘날에도 필요한지 여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19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해서 20세기에 완성된,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분명한, 학문제도와 교육체계에 의해 우리의 제안이 반발될 가능성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융합연구는 사태에 즉해서 시작되어야 한다. 분할(분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종합)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에서 열거했던 물음들에 답을 주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사회에서 돌봐주고 옹호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학문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사회에 기여해야 하며, 사회의 바람에 호응해 응답해야 한다. 새 문리학은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던진 물음과 화두에 응하는 융합학문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문사철 인문학의 상대역인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등의 분과도 경계가 느슨해지길 바란다. 분과는 제도의 산물이고, 제도는 시대의 필요 산물이다. 시대는 크게 바뀌었고, 자유인을 위해 지금까지의 제도는 충분히 바뀔 의무가 있다. 전문 학술 분과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대학 수준의 교육은 전반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철학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프로그램 상주연구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 『생각의 싸움 · 인류의 진보를 이끈 15가지 철학의 멋진 장면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모빌리티 사유의 전개』(공저), 『철학, 혁명을 말하다』(공저)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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