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 발간, 과학 한국 집중 조명…“한국은 글로벌 혁신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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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 발간, 과학 한국 집중 조명…“한국은 글로벌 혁신 리더”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05.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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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후 27년 만에 한국의 연구 성과와 제도 다뤄
- R&D 톱다운 방식에서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로 전환
- '빠른 추종국(fast follower)'에서 '선도국(first mover)'으로
- K방역 성공은 기초연구 투자 결실…정부 주도 연구로 진단키트 개발
- 2019년 국내 연구기관 성과 지표, 서울대 1위·KAIST 2위

한국 과학계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국제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리나라의 방역·의료기술이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가 연구개발(R&D), 과학 기술력 등 한국 과학계 전반을 다룬 특집호를 지난달 28일 발간했다.

▲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 표지 (출처=네이처)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다목적 인공위성 '천리안 2B'의 전자파 실험을 하는 모습이다.
▲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 표지 (출처=네이처)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다목적 인공위성 '천리안 2B'의 전자파 실험을 하는 모습이다.

네이처는 이번 특집호를 통해 "한국이 연구와 체계적 개혁, 인재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글로벌 혁신리더로 발돋움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정책이 정부·학계·산업계 사이의 강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한국이 정보통신기술과 혁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이러한 특성이 효과를 본 대표적 사례로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신속한 개발과 생산을 들었다.

또 지난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던 것에서 2018년에는 4.5% 이상으로 늘었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연구개발 전략이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에서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강조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한 네이처는 기초연구와 독창적인 연구개발에 투자해 ‘빠른 추종국(fast follower)’이 아닌 ‘선도국(first mover)’이 되겠다는 한국의 연구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한국이 미국의 ‘사이언스(Science)’誌와 더불어 과학저널 쌍두마차로 통하는 영국의 ‘네이처(Nature)’誌에 커버 기사로 다뤄진 것은 대전 엑스포가 열린 1993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는 <네이처>를 발행하는 스프링거가 펴내는 국제적 권위의 과학연구 성과지표로, <사이언스> <셀> 등 자연과학 분야 세계 상위 1%의 과학저널 82개에 실린 논문의 연구 성과를 고려해 산출된다.

◇ GDP 대비 R&D 투자 세계 2위

한국의 적극적이고 높은 R&D 투자 비중에 주목한 특집호는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위기에 발빠르게 대처 가능했던 근본적인 배경엔 정부 주도의 강력한 R&D 예산 투입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8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율은 4.5%로, 이스라엘(4.9%)에 이어 세계 2위다. 2000년 GDP의 2.1%였던 R&D 지출 비중은 2018년 4.5%로 2배 이상 높아졌으며 2020년에는 4.9%에 달한다. 이에 기반해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떠올랐기에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치밀한 역학조사, 민간 주도의 발빠른 진단시약 상용화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부 주도의 응용 연구를 통해 반도체와 무선통신에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이런 응용 연구 중심에서 벗어나 기초연구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 연구 지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연구자 중심의 기초연구 예산을 2025년까지 2조5000억 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0년 정부 R&D 투자는 지난해에 비해 18% 늘어난 24.2조원에 달한다. 네이처는 이런 연구개발 투자는 단순히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빠른 추종자’가 아닌 ‘선도자’가 되겠다는 국가의 목표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 2015~2019년 국내외 대학의 삼성과 공동연구 비중 순위
▲ 2015~2019년 국내외 대학의 삼성과 공동연구 비중 순위

네이처는 이와 함께 한국 전체 R&D 지출의 약 4분의3을 차지하는 민간 부문에서도 삼성과 LG 등 주요 대기업의 기초연구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스윈뱅크스 네이처 인덱스 개발자는 “한국이 응용연구뿐 아니라 기초연구를 증진하려는 정부 이니셔티브(initiative·주도권)를 보이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으며,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교수)도 네이처 인덱스와의 인터뷰에서 “산업계가 보다 더 많은 박사급 연구자를 요구하고 있다”며 “투자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말했다.

◇ 기초연구 가속화 전망…연구자 주도의 상향식 연구 지원 강화

네이처의 이 같은 분석은 향후 한국 과학계에 기초연구 가속화의 전망을 밝게 해준다. 특히 네이처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조명하며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나 일본 리켄 연구소 역할을 한국 내에서 하는 기관으로 암흑 물질·나노 물질·게놈 공학·기후 변화 등 전반적인 기초연구를 포괄하는 기관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국내 과학계에서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IBS RNA 연구단도 소개했다. IBS RNA 연구단은 올해 4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의 RNA 전사체를 분석해내 주목받았다. 김 교수는 당시 IBS 홈페이지에 'IBS가 밝혀낸 코로나19 유전자 지도의 의미'라는 글을 통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서는 꾸준한 기초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에 실린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IBS RNA 연구단 단장) (네이처 인덱스)
▲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에 실린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IBS RNA 연구단 단장) (네이처 인덱스)

과학계는 지난해 24번째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과 비교되어 '정부의 막대한 투자를 받는 것에 비해 드러나는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탄탄한 기초과학이 뒷받침된 덕분이지만 한국의 기초과학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때부터 시작됐다. 이마저도 1960년대 산업 발전을 위한 응용연구에 매진하느라 실질적 투자는 80년대나 돼서야 이뤄졌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의 언급처럼 “단기간에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임무 중심의 연구개발이 그동안 강조”됐기 때문이다.

염한웅 부의장과 노정혜 이사장은 네이처 인덱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과학계가 점차 '상향식의 기초·창의연구'로 전환 중임을 시사했다. 염 부의장은 우리 과학계의 논문 중심 평가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이런 구식 문화는 창의성의 발현을 막는다"고 말했다. 노 이사장도 "최상위 연구가 임팩트 팩터나 인용횟수 기준일 필요는 없다"며 "한국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방향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따르기보다 우리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이처는 물론 톱다운 방식의 연구개발 전략이 아직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네이처는 "강력한 연구개발 투자와 체계적인 개혁을 통해 한국을 혁신의 리더로 만들겠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어떻게 신속하고 지속 가능한 결과를 이뤘는지 보여준다"며 "한국 정부의 체계적인 접근은 연구실의 아이디어를 제품과 산업으로 바꾸는 혁신 경제를 만드는데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네이처는 K-방역의 중심인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톱다운 방식의 긍정적 산물로 봤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업체 4곳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후 준정부기관인 한국연구재단(NRF)의 지원금을 받은 업체들이었다. 위에서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톱다운 방식이 정부와 학계, 산업계간 강한 유대를 형성시킴으로써 정보통신기술과 혁신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 국가 간, 학계와 산업 간 인적 교류 활발…연구의 다양성과 생산성 제고

네이처는 기초과학에 대한 한국의 이러한 투자가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지난 4년간 연구 성과의 핵심 지표인 논문 공유 횟수로 측정한 고품질 연구 생산량에서 꾸준히 상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과의 협력 비중이 크게 늘어나, 2018년 일본을 제치고 중국의 두 번째 공동연구 파트너가 됐다. 한국의 제1 공동연구 파트너는 미국이다.

특히 한국은 2017년 이후 해외 연구자가 국내로 유입되며 다양성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립된 연구 환경에 있었던 과거의 한계를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이다. 네이처 인덱스에 의하면 최근 3년간 한국으로 유입된 해외파 연구원(국내로 돌아온 내국인 포함) 비율은 4.3% 이상으로, 세계 평균치(3.7%)를 웃돈다. 이들 해외파 연구원은 지난 5년간 10회 이상 인용된 논문 수가 국내 연구원보다 50% 이상 많았다. 거꾸로 한국에서 외국으로 옮겨 활약 중인 연구원은 미국이 575명, 영국 251명, 인도 73명, 독일 67명 순이었다.

이와 더불어 네이처는 학계와 산업 간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 또한 우리 과학계의 특수성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집호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연구원 1000명당 3명이 산업 분야에서 학계로 넘어갔다. 이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2위인 프랑스는 이 수치가 2.5명 이하에 불과했다. 반면에 학계에서 산업으로 넘어간 연구원 비중은 네이처 인덱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연구 강국 10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 네이처 인덱스가 선정한 연구 강국 10개국은 미국, 중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한국, 호주이다.

◇ 국내 연구기관 종합 순위…서울대, KAIST, IBS 순

▲ 2019년 논문 공유수 기준 국내 기관의 성과 순위 (네이처 인덱스)
▲ 2019년 논문 공유수 기준 국내 기관의 성과 순위 (네이처 인덱스)

네이처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일본에 견줘 물리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한국은 연구 분야별 논문 주제 비중을 가리키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4개국 중 물리학 비중이 제일 높았다. 네이처 인덱스가 지난해 발표된 논문을 기준으로 발표한 국내 연구기관 종합 순위는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초과학연구원(IBS), 연세대, 성균관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순이었다. 그리고 2015년과 2019년의 논문 기여도 평가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연구기관으로 IBS를 꼽았다. 이어 UNIST, 충북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순이었다. 또 최근 3년간 해외 연구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연구기관은 KAIST, 서울대, 성균관대 순이었다.

▲ 지난 3년간 국내 연구기관의 해외 인재 유입 비중. KAIST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네이처 인덱스)
▲ 지난 3년간 국내 연구기관의 해외 인재 유입 비중. KAIST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네이처 인덱스)

산학 연구는 성균관대가 독보적인 성과를 보였다. 2015~2019년 삼성그룹은 성균관대와 159편의 네이처 인덱스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서울대, KAIST, 미국 스탠퍼드대, UC버클리 순으로 공동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특집호는 삼성이 한국의 대학들과 협력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협력하는 대학들의 순위를 소개했다. 특집호는 한국이 주목할 만한 강점을 보여주는 그래프, 기술을 선도하는 삼성의 주요 연구 협력자,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한국 기관 등도 소개했다.

◇ 창의적 연구 어려운 낡은 문화 개선 절실

네이처 인덱스 창립자 스윈뱅크스는 “전후의 경제 과학 발전으로 증명된 창의성과 결단력은 앞으로 더 큰 성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한국이 빠른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응용 연구뿐 아니라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정부의 추진계획을 보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이러한 평가를 받은 것은 고무적이라면서도 너무 밝은 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한국의 과학기술은 아직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며, 보다 혁신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윙뱅크스 회장은 또한 "과거 1970~80년대에는 IBM과 벨연구소 같은 기업이 기초과학 연구를 많이 했다"며 "장기적으로는 삼성 등 한국 대기업들도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응용 연구가 단기적인 경제성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기초과학과 응용 연구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했다. 돈만 내면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주는 유령 학회 문제 등에 관해선 "단순히 논문의 숫자가 아닌 논문의 질을 따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예산을 주는 기관, 연구기관, 대학이 스스로 나서서 연구자들을 평가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논문의 질을 우선시하는 추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창의적인 연구가 어려운 환경이 한국 과학계의 한계로 지목되어왔다. 기초과학 연구의 상대적 소홀, 논문 개수 중심의 평가 시스템,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 과제나 예산 등이 정치적 이슈에 휘둘리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염한웅 교수는 부실학회 참가, 논문 중심의 평가 시스템 등 논문의 질보다는 양을 강조해 오면서 관행화되어온 이러한 문화는 “논문을 많이 생산하는 데는 충분히 좋겠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이처럼 창의성 발현을 막는 낡은 문화의 청산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네이처 인덱스는 한국의 R&D 투자 전망은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R&D 예산을 늘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조선, 원자력 등 전통 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 소재·부품·장비 관련 일본의 무역 공세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정책 입안자들은 대기오염이나 고령화와 같은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연구과제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전역 미세먼지 추적이나 치매 퇴치를 위한 이니셔티브가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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