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제국주의의 시대…경제학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상태바
경제학 제국주의의 시대…경제학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5.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깊이 읽기]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들다
-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에 속지 않기 위해서이다.”

■ 깊이 읽기_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21세기북스, 480쪽, 2020.04)

인간은 완벽한 합리성과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 ‘호모 에코노미쿠스’인가?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생각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경제학의 대전제였다. 20여 년 전부터 행동경제학이 인간은 결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주목받았지만,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경제학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경제학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인간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연구하고 제시한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은 ‘넛지’라는 개념으로 선택 환경과 인간의 선택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리처드 세일러에게 돌아갔다. 행동경제학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세일러의 이론은 선택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바꾸어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경제 이론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우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일러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통 경제학의 이런 핵심적인 전제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완벽한 합리성과 효율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경제학적 개념이 경제학을 뛰어넘어 인간의 사고방식과 일상으로 파고들며 우리의 삶과 문화를 바꾸고 타락시켰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우리는 무임승차를 영리한 행동이라 여기게 되었고, 생명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측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으며, 세계화된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우리가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상과 가치를 이해하는 방식은 서서히 그리고 교묘하게 변화했다. 한마디로 경제적 가치가 도덕적, 윤리적인 기준을 압도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시장 중심적 세계관의 출발점이 된 몽펠르랭회에서 시작해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꾼 경제학 이론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확산되었는지를 20세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일목요연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로 대표되는 게임 이론에 근거한 결정이 어떻게 ‘합리적 바보’를 만들어내며, ‘부의 극대화’가 곧 정의라고 말한 코스의 주장이 어떻게 오해되고 왜곡되어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했는지를 경제학자들의 삶의 과정과 함께 추적해나간다.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고 과도하게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게임 이론은 1950년대부터 미국 군사 전략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에 전략적 사고의 틀을 제시했으며, 핵무기를 두고 소련과 대립하던 미국의 핵전략을 위한 완벽한 도구였다. 저자는 게임 이론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폰 노이만에서 시작해 내시 균형, 게임 이론의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죄수의 딜레마’ 이론으로 이어지는 게임 이론의 역사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게임 이론은 우리에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이 아니라 ‘합리적 바보’가 되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며, 인간의 신뢰가 장기적인 협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결정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에 과학적 허울을 씌울 뿐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이후 경제학은 실험실 연구와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례를 통해 게임 이론과는 상반되는 수많은 협력의 증거를 찾아냈다. 인간은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에서도 협력할 수 있고, 상대가 틀림없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이유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도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고, 많은 국가가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또한 기업은 가격 경쟁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해롭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고 싶은 유혹에 저항한다. 하지만 게임 이론적 사고방식은 이미 경제학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고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합리성’의 정의를 거부함으로써 ‘합리적’ 처방에서 비롯되는 파괴적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997년 교토의정서 체제에 의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이 탄생했다. 탄소시장은 인류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모델로서 ‘시장’을 선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이에크에서 시작된 자유 시장 경제를 주장한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출발점으로 올라가면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한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로널드 코스는 우리는 삶의 모든 부문에서 언제나 기꺼이 거래하려 한다고 말하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 시장을 도입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코스 정리’를 선언했다. 코스의 사상은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리처드 포스너에 의해 법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시민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란 믿음으로 이어졌고,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정부나 법 체계는 시장의 힘과 자유로운 개인 간의 거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코스의 주장은 민영화와 공공 자산의 경매, 탄소 시장 등 시장에 기반한 시카고학파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처음 탄소시장이 언급되었을 때에는 사람들은 이런 개념을 충격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 시장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주류 정책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틀이 되고 있다. 오늘날 코스 정리는 난민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할당량의 정부 간 거래, 인구 조절을 위한 출산 허가 시장 등 새롭게 ‘창조’되는 시장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장기 매매 시장이나 유아 시장의 합법화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포스너의 친구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였던 게리 베커는 인간은 모든 것을 극대화하려는 존재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주장을 경제학만이 아닌 인간의 모든 행동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경제학에 포함되지 않던 삶의 여러 면에 경제학적 추론을 확대 적용하며 경제학 제국주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베커를 비롯해 경제학 제국주의자들은 정부의 간섭과 관련해, 정부 정책은 필요하지 않으며 기존의 정부 간섭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결론을 내렸다.

경제학 제국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통계적 생명’의 가치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에 값을 매기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저자는 시장과 가격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장 중심주의와 경제학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또한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한 코스의 주장이 시카고학파에 의해 어떻게 오해되고 왜곡된 채 넓게 확산되었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며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경제학에서 비롯되어 은연중에 우리 상식이 되어버린 모든 개념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경제학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을 타락하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한다. 가령 1850년대 위스콘신에서 ‘돈을 내지 않고 기차를 타는 행위’를 뜻하는 표현으로 처음 사용된 무임승차가 어떻게 학계의 은어에서 일상의 언어로 바뀌며 결국 영리하고 현명한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시작된 ‘인센티브’가 모든 의미의 동기 부여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오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한 유명한 사례와 스위스의 방사성 핵폐기물 폐기장 선정을 두고 벌어졌던 논란을 통해 잘못 설계된 인센티브가 어떻게 인간의 내재적 동기를 몰아내고 인간의 도덕적 기준의 틀을 바꾸어버리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시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넛지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세계화된 시대에 불평등의 심화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경제사적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은 능력과 재능에서 기인하는 필연적 결과라는 파레토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파레토는 민주사회가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거나, 우월한 사람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제한하려 한다면 침체와 쇠락의 위험을 맞게 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빌 게이츠의 사례를 들며 개인의 성공을 혼자만의 업적이라 생각하며 과거 세대와 현재 동료들과 정부의 기여를 무시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독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불평등을 수용하며 정당화하는 쪽으로 변해가면 불평등은 자체적으로 영속화되는 경향을 띤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CEO들의 성과급 계약을 선전하며 사람들을 자극할수록, 불평등이 더 큰 불평등을 낳는 악순환이 뒤따른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경제학은 부유한 권력자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언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자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이다”라는 경제학자의 말을 빌려 경제학이 정말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오만함을 버리고 자신의 조언에 책임지는 동시에 실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제학의 이론들이 경제라는 분야를 뛰어넘어 우리의 생각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조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을 위한 진정한 경제학을 찾아나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경제학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과 도구가 무엇인지 찾고, 그 방법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경제학자는 당면한 문제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능숙하게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