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속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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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 속의 서울
  •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 승인 202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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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조 칼럼]

어떤 이는 대대로 이어온 서울 토박이임을 자랑스레 얘기하는 분이 있다. 당연하다 하겠다. 그렇지만 서울을 선망하여 서울에 와 살면서 직장도 얻고 자식도 낳아 기르면서 반세기 동안이나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서울시민이 되어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야 거대화되고 복잡해졌다 하여 공해 운운하며 탈 서울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서울은 서울을 속속들이 잘 알고 서울에 잘 적응하면서 서울을 사랑하고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가려는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삶의 보금자리요 삶의 터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서울에 계속 살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타의에 의해 서울을 등진 사람들보다도 기실 알고 보면 이같이 오랫동안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오랜 시간 스스로 타성화 되어 서울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 문화적 고마움을 모르고 그 진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나의 경우 이따금 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나 긴 지방 나들이를 마치고 서울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서울의 편리함과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았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어떠랴…

그렇다고 또 나만이 서울을 잘 알고 서울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며 서울을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서울은 역시 서울을 인식함을 통하여 소유하고 사랑하는 자의 것이니까.
 
서울에 주거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서울이 그 사람의 서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주제가 무엇이든 시인으로서 서울을 노래한 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면 명예롭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오십여 년 동안 써온 열두 권의 시집 가운데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노래한 시가 몇 편이나 되나 대충 찾아보니 꼭 열한 편이나 발견되어 자못 감회가 새로웠다.

주로 1972년 서울 이주 이후 펴낸 제3시집 목숨의 盞, 제4시집 無明의 시간 속으로, 제5시집 입, 제6시집 낯선 모습 그리기 등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서울의 별」, 「엘리베이터의 詩」, 「꽃집 앞을 지나며」, 「솔방울 산조」 등은 문명비평을 주제로 한 시들이고, 「위쪽과 아래쪽」, 「을지로는 붐비다」, 「삼각지부근」이나 「개포동의 어둠」 그리고 「한강의 사금 밭」은 그냥 서울의 서정을 노래한 시들이다. 유독 그런 서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인식이라고 할까 비판의식을 형상화한 서울의 시 이외에 이따금 편안한 서울의 소시민 의식을 노래한 「서울호일好日」이란 詩도 발견되어 속으로 다시 읽으며 당시 자신의 생활상과 의식세계를 꿰뚫어 보고 비록 가난했지만 소시민으로서 그 시절 安分知足의 삶을 노래할 수 있었던 詩心 속에서 행복할 줄 알았던 것을 되돌아보며 나름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본다.

그 한 구절을 옮겨본다.

“//모든 차량은 제 시간에/제 코스로 운행을 계속하고/나는 육십원짜리 좌석버스에서도/불편 없이 무게중심을 잡았다//”

그런가하면 「서울의 별」이란 詩에는 “//서울의 별들은 경기를 한다/충혈된 눈/한 손을 비틀고 입을 쪼아리며/이젠 하도 많이 소음에 놀라서/습관성 전간처럼/경기를 한다//”

이 시는 내가 1970년대 처음 직장 근처 원효로 부근 어느 2층 집에 세들어 살 때 내 어린 딸아이가 아래로 굴러 경기를 할 때 겪은 고통스런 체험을 소재로 한 詩다

또 “//선배와 함께 술에 취해 찾아간/개포동 288번 버스 종점 부근의/어느 숲 속 소문난 집인가는/철늦어 이미 철수해 버렸고/마침 대모산 기슭을 내려오던 어둠은/한 눈에 보아도/학비를 버느라 책 한권 읽지 못하고/아르바이트로 힘겹게 보낸/대학생의 고단한 등허리처럼/등이 하얗더라//”는 「개포동의 어둠」이란 詩의 전반부이고

“//걱정거리에 짓눌린 사람들은/위쪽에 살거나 아래쪽에 살거나/걱정거리에 매달려/항상 얼굴이 창백하다/아니, 원하는 것은/위쪽도 아래쪽도 아닌/내가 사는 고장의 밝음과 아름다움의 평수坪數다//”는 졸시 「위쪽과 아래쪽」의 일절이다.

종국에 서울의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워도 사는 사람들끼리 불화하고 위화감을 주며 마음이 불행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나의 시적 메시지를 담아 보려 한 것이 바로 이 詩다.
 
서울 정도 육백여 년을 지난 오늘의 서울 역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민족이 太平世代에 안주하여 활기차게 계속 그 맥을 이어나가 그 안의 모든 것이 인류 역사에, 타임캡슐 속에 영원히 살아남기를 기원해 본다.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중앙대 국문과 명예교수로 시인이자 인문학자.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로 『날쌘 봄을 목격하다』, 『고운 눈썹은』 외 『지상의 시간』, 『황혼의 민낯』, 『겨울 대흥사』 등 여러 시집이 있다. 2006년 간행한 『류근조 문학전집』(Ⅰ~Ⅳ)은 시인과 학자로서 40여 년 동안 시 창작과 시론, 시인론을 일관성 있게 천착한 업적을 인정받아 하버드 대학교와 미시건 대학교의 소장 도서로 등록되기도 했다. 현재는 집필실 도심산방(都心山房)을 열어 글로벌 똘레랑스에 초점을 맞춰 시 창작과 통합적 관점에서의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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