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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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집
  • 강미선 이화여대·건축학
  • 승인 2020.05.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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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게 꽤 큰 자리를 내어줬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치 않은 것으로 만드는 기세가 대단하다. 아침이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던 행위가 특별한 행위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집의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만나게 되는 위험한 바깥세상. 그래서 이즈음에 사회가 무엇인가와 함께 집은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하루 셀프 자가격리를 했다. 회의를 함께 한 분이 일주일 전 탔던 SRT 승객 중 확진자가 나와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물론 하루 만에 좀이 쑤셔 슬며시 셀프 해제를 하고 말았다.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흔히 사회라고 일컫는 집밖과 집으로 세상을 구분 짓는 행위이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일단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차단된 안전한 곳이다. 현관문을 꽝 닫으면 그 어떤 것도 나갈 수 없고 들어올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조차도. 그러니 일단 집에 확진자가 없다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다. 그러나 그 안전한 세상에 갇힌 이들은 하루만 지나면 힘들다고 호소한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물리적인 연결끈을 대신할 사이버상의 연결로 필요 물품이 즉시 눈앞에 배달된다 해도 내가 직접 몸으로 만나는 바깥세상이 금방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집은 진정 안전한 곳일까? 우리가 꽁꽁 싸매고 있다한들 집이 집 구실을 하게끔 해주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전기, 물, 가스, 오·배수, 심지어 통신. 예전 해외 아파트 감염 사례에서 보듯 그 위험하다는 공기마저도. 욕실이나 주방의 팬, 최신 아파트에 마련된 공기순환기, 각종 파이프들이 연결된 샤프트를 통해 우리는 아랫집, 윗집들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요양보호사들의 감염으로 홀로 집에 남겨진 중증장애인의 얘기나 노약자들의 얘기는 집이 편안, 안전한 곳의 대명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집은 끊임없이 사회가 침입해야만 안전하다. 아무리 긴급 생활용품이 전달된다 해도 돌봄의 눈길이나 손길이 드나들지 않으면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취약한 곳이다. 또한, 나는 안전한데 지역사회가 붕괴된다면 내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밖 해로운 것으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꽁꽁 싸맨 집을 선호한다. 그러나 내가 약해지는 순간 그 장벽들은 오히려 나를 공격한다. 누구나 한순간 약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이는 내가 골절환자로 지난겨울을 나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바다.

바이러스는 물리적 인자다. 어쨌든 무찌를 수 있는 실체는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우리는 점점 알아간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때려잡기 힘든 인자, 가령 이 과정을 겪으며 확대 재생산된 혐오, 불신은 바이러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예측만 할 뿐 이렇다 할 준비가 없이 맞는 초고령 시대와 함께 올 사회적 변화를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선호하는 프라이버시가 확실히 보장되는 집들은 오히려 문제다. 지금도 우리가 힘을 얻는 순간은 그 장벽들이 허물어질 때다. 지역감염이라 하지만 온정의 손길이 그 지역의 벽을 넘나들 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공유경제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섣불리 얘기한다. 이미 공공건축에서 공유공간을 삭제하라고 외치는 자문위원들도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가고 또 다른 감염병 시대가 왔을 때, 심지어 주기적으로 그것이 찾아올 때 지금처럼 정부가 온 힘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그 때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은 정부자본보다는 오히려 이웃과의 관계자본일 것이다. 평소에 맺어둔 느슨한 연대. 그것 없이 우리의 집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강미선 이화여대·건축학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건축기획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건축기획 및 주거, 공간에서의 젠더이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화여대 ECC 및 이대서울병원 등 다수의 건축프로젝트를 총괄하였다. 현재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건축생산방식에 대한 제도개선에 힘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간의 공유방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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