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영화는 계속된다...또는 고립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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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는 계속된다...또는 고립의 영화
  • 김지훈 중앙대·영화미디어학
  • 승인 202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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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훈의 '영화미디어학의 스크린'

코로나 시대의 영화와 스크린 문화에 대한 또 한 편의 글이다. 지난 원고에서 나는 브이로그와 데이터 시각화가 코로나19로 영향 받은 삶을 기록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디지털 다큐멘터리 미디어 실천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실천은 진행 중인 현재의 참여라는 다큐멘터리 충동에서 파생하여, 가능한 미래에 대한 사변적 예측과 선제적 의사결정을 위한 증거와 지식을 구성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기록물(document)과 구분하게 해주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영화는 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현실의 즉각적인 흔적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 그 현실과의 실존적 연결을 보증하는 렌즈 기반의 이미지는 영화를 과거 및 역사성의 감각을 환기시키는데 탁월한 예술로 견인해 왔다. 그런 감각을 일깨우는 영화적 세계의 완성은 현실에 밀집하거나 그 현실의 공백을 미세하게 채우는 사물과 신체를 포착하는 프레이밍, 그 관측의 작용으로 기입된 지속의 단편들을 통합하거나 병렬시키는 동시에 그들 간의 의미 있는 틈새를 만들어내는 편집, 그리고 그렇게 의미 있게 조직된 과거의 영화적 신체를 현재의 관객과 만나게 하는 상영을 거쳐야 한다. 촬영과 편집, 상영은 개념적이고 미학적이지만 동시에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바로 그 실천의 제도적인 차원을 봉쇄했고, 영화를 구성하는 무빙 이미지와의 대면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 또한 그로 인해 일시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이 상황은 스튜디오의 운영 정지, 제작진의 이동 제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념 또는 상상력으로 직조된 세계를 스튜디오의 작업으로 번역하는 일련의 물질적 운동, 관객에게 자신과 떨어진 세계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데 필요한 카메라의 배치와 작동을 수반하는 인력의 실질적 운동 또한 일시 정지되었다.  

Ⓒ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그런데 이 모든 일시 정지 상태가 영화의 모든 역학을 멈추게 하는가? 금년 4월 초부터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가 유튜브에 공개해 온 ‘공간(Space)’ 프로젝트는 비상사태에서도 가능한 영화적 실천의 흥미로운 사례다(https://www.youtube.com/user/filmfestivalgr). 해당 영화제는 영화제 제작진 및 관객의 참석으로 형성되는 물리적인 사회성에 근거한 행사인 영화제가 곤경에 처하자, 격리와 고립에 처한 세계 곳곳의 감독들에게 공간을 테마로 한 단편 영화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영화는 7편 또는 8편의 단위로 순차적으로 편집되어 현재까지 3개의 프로그램이 공개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감독 중 다수는 그리스 출신이지만 지아 장커, 드니 코테, 알베르 세라처럼 동시대 예술영화의 최전선에 선 작가들 또한 이에 합류했다. 이 감독들이 제작한 영화의 공간은 대부분 실내에 국한되어 있으며 조금 확장하더라도 테라스, 계단, 발코니, 정원 등을 맴돌 뿐이다.

이 공간의 한계로 인해 ‘공간’ 프로젝트를 이루는 작품들의 영화적 세계 또한 제한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적 세계가 카메라를 통한 관찰 자체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튜브를 통해 관객이 목격하는 세계의 지형도는 생각보다는 다양하다. 코로나의 공포를 초현실적인 사건으로 변환한 픽션도 있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서만 외부 세계로의 환기구가 열려 있는 일상을 기록한 일기 영화도 있으며, 집의 천장과 복도, 마루와 외벽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노동의 디테일과 리듬을 분할화면의 안무로 변환한 시적 양식의 작품도 있고, 인형과 같은 소도구를 동원한 연극 형식의 소극도 있으며, 자신의 서재나 가족사진을 반추하면서 혼돈의 세계를 성찰하는 자전적인 동시에 공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도 있다. 드니 코테의 <cnfnmnt e/scp(i)sm>은 봉쇄 상황 속의 공허한 삶을 표현하기 위해 감염자 통계 확인, 포르노 영화 감상, 텅 빈 거리에서의 조깅, 음모 이론을 설파하는 온라인 비디오 시청,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1962) 관람과 호응하는 다채로운 시점의 촬영을 활용한다. 단조로움의 정서를 전달하는 시선과 거리의 다양성, 스크린 속 세계와 스크린 바깥 세계와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감각이 이 4분간의 작품에 충만하다. ‘고립의 영화’가 전개하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공간’ 프로젝트의 여러 작품은 더들리 앤드류(Dudley Andrew)가 애니메이션이나 순수한 디지털 창조물로 이루어진 영화와는 반대편에 자리한 것으로 인식한, 그래서 디지털 이전의 영화가 풍부하게 전개해 온 ‘발견의 미학(aesthetic of discovery)’에 충실하다. “발견의 미학은 뉴 미디어의 미학에서처럼 세계가 우리의 관람 조건 및 우리의 편의와 즐거움에 순응할 때까지 그 세계를 가공하기보다는 세계가 제공한 가시성의 조건을 우리의 시각이 수용하게끔 한다.”

Ⓒ 자아장커 감독
Ⓒ 자아장커 감독

‘공간’의 두 번째 모음집에 수록된 지아 장커의 흑백 영화 <방문>(Visit, 2020)은 이 ‘발견의 미학’에 대한 믿음을 코로나 시대의 신체적 감각과 정동을 포착하는데 투자하면서 이 시대를 통과하는 영화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지아 장커의 사무실로 찾아오는 다른 감독의 노크 소리로 시작하는 영화는 물리적 거리두기의 어색한 감각을 180도 가상선을 넘어서는 공간적 부자연스러움과 주관적 시점을 강조하는 편집으로 전달한다. 여비서가 감독을 발열 체크할 때, 감독이 청하는 악수를 지아 장커가 사양할 때, 사무실에서 지아 장커의 호출을 받고 비서가 손 소독제를 전달할 때 행동과 반응 사이의 균열이 열린다. 마스크를 쓴 채 여비서나 손 소독제에 주목하는 두 인물의 응시로 강조되는 그 균열은 코로나19로 인해 영향을 받은 외부 세계의 균열, 표면상으로는 평온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친밀성과 경계심 사이에서 분열된 병리적인 내면 세계의 균열이다. 현재에 열린 균열은 행위의 진전을 유예시킨다.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한 로케이션 방문이 불가능해진 지역의 사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태블릿에 지아 장커의 손가락이 닿음을 깨달은 그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다.

지아 장커는 이렇게 행위와 반응 간의 습관적인 회로를 단락시킨 코로나 19의 현재에 만연한 정동을 <스틸 라이프>(2006)에서 활용한 절제된 초현실주의로 표현한다. 손을 씻은 감독이 문득 화장실 한 구석에서 바라본 화분, 그리고 지아 장커 자신이 화장실 창문 너머로 본 하늘은 채광으로 충분한 색채 화면으로 제시된다. 행위와 반응 간의 간극에서 밀려드는 과거의 흐름으로 채색된 이 두 인서트는 코로나 19 이전 세계에 대한 멜랑콜리의 정서를 드리운다. 그 정서는 지아 장커가 이 영화를 제작하고 쓴 짧은 편지에 드러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에 전쟁을 체험했던 감독과 그런 적이 없는 감독, 이렇게 두 부류의 감독이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경험이 서로 다르면 인간 세상과 사회에 대한 이해도 다르기 마련일 겁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감독이 있다고 말할 겁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를 살아온 감독과 그렇지 않았던 감독 말이죠”(편지의 원문은 https://filmkrant.nl/opinie/a-letter-from-jia-zhang-ke/).

이 장면 후 두 감독은 시사실에서 함께 예전에 촬영한 필름을 감상한다. 마스크를 쓴 채 이들이 응시하는 화면에는 일군의 군중들이 어둠 속에서 보인다. 외부 효과음으로 삽입된 파도 소리로 인해 좌우로 흔들리듯 몸을 부대끼는 이들은 물에 잠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과거의 언젠가에 촬영되었음을 감안하자면, 이들은 코로나19 이전의 민중에 대한 이미지, 밀집 자체가 어색하지 않았던 집단성의 이미지다. 그러나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다소 위태롭게 흔들리는 이들의 모습으로 인해 그 과거의 이미지는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파도를 통과하는 우리의 현재로 연장된다. ‘발견의 미학’은 현재를 점유한 관객의 감각으로 연장되는 과거의 지속임을 일깨운다. 그 현재의 연장을 호소하듯,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된 일군의 인물들은 기대감 서린 표정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서로 다른 개인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장소가 영화관임을 감안하든, 이 인물들이 바라보는 화면 바깥이 불확실하고 비가시적이지만 도래할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가정하든 우리는 그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 존재와 세계를 이루는 조건을 발견한다. 그 발견의 잠재성을 전달하는 한, 고립의 영화는 비상사태에서도 이루어지는 영화의 작업을 입증한다. 그 작업은 물론 미래를 예비한다. 지아 장커가 자신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듯 말이다. “우리는 이 전염병에 맞서 우리가 견뎌 온 노력의 시간을 위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서 정직하고 용기 있게 세상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영화관으로 빠른 시간 안에 돌아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앉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제스처입니다.”


김지훈 중앙대·영화미디어학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저서로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 Hybrid Moving Images in the Post-media Age』(Bloomsbury, 2018/2016), 번역서로 『북해에서의 항해』(2017),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2005)가 있고 히토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 개정판(2018) 감수와 해제를 맡았다. 실험영화 및 비디오, 갤러리 영상 설치 작품, 디지털 영화 및 예술, 현대 영화이론 및 미디어연구 등에 대한 논문들을 , , , 등 다수의 국내 및 해외 저널에 발표했다. 현재 두 권의 저작 『Documentary's Expanded Fields: New Media, New Platforms, and the Documentary』와 『Post-verite Turns: Korean Documentary in the 21st Century』를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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