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송파구청장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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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송파구청장이 누구지?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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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에세이]

나는 서울특별시 송파구에서 살고 있는데 구청장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정치학 교수 출신이다. 정치학 교수가 자기 고장 지자체장이 누구인지 몰라도 되겠는가? 창피하지 않은가? 되겠다. 창피하지 않다. 왜 그런가? 도대체 누가 구청장이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치학 교수이든 그 아들이든 발레 교수이든 그 딸이든 말이다. 왜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가? 누가 구청장이 되든 나와 나의 아내와 내 옆집 사람의 삶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정치학 교수인데,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면 나쁜 놈들이 제 맘대로 나라를 휘두르니 ‘꼭 투표하세요’ 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제 사는 곳 단체장이 누구인지도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몇 년 전에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신경 써서 일부러 알아보았더니 어떤 아주머니였다. 송파구답게 보수 정당 소속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아주머니가 구청장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아저씨인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사람이 되나 저 사람이 되나 우리 삶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독재 시절도 아니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정치꾼들이 제 맘대로 행동하고 관이 민을 핍박하는 일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투표는 꼭 해야하고 정책이나 이념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라고 교과서들과 그 교과서들을 읊조리는 선생님들이 노래를 부르지만, 도대체 누가 누군지 알아야 뭘 선택하고 말고 하지. 그리고 그 정책이라는 것들도 뭐 별달리 다른 게 있어야 말이지. 이를테면 북한을 쳐들어가겠다든가 일본과 단교를 하겠다든가 핵무기를 들여오겠다든가 OECD를 탈퇴하겠다든가 국민 모두에게 매달 백만 원씩을 주겠다든가 하는 정책이라면 확 눈에 띄고 무식꾼들이라도 알 수 있지만, 그런 정책들이 나올 수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명박이 후보자 시절에 내세웠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은 찬반이 확실히 갈린 대표적인 정책 사례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하면 그걸 찬성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중생들이 많은 법. 참고로 나는 반대했다. 뭘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막 일 벌이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개인 정서의 소산이기도 하니 별로 고차원의 반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여당과 야당의 주요 정책 차이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겠는가?(하도 바뀌어서 당 이름들도 잘 모르겠다.) 쉽게 알 수 있는 정책 차이라는 게 조국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정책 아닌 정책 차이 아니겠는가? 이런 걸 정책이나 이념 차이라고 그걸 보고 투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럴 수 있다. 아니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정치 참여를 정책이나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가지고 하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진영 논리인데, 이는 점잖게 말한 것이고 그냥 패거리 논리, 아니 패거리 ‘감정’이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박근혜를 탄핵하려고 거대한 촛불집회들이 열렸는데 사실 그러지 않아도 박근혜는 법 절차에 따라서 탄핵될 예정이었다. 혹시라도 반동세력들이 이를 방해할까봐 그랬던 것인데 아무튼 그 결과 박근혜는 탄핵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촛불혁명이라고 흥분하였는데, 과연 무엇이 혁명이었는지 참 오버스러운 일이었다. 새 정부 들어와 조국 사태가 일어나자 이쪽저쪽 패거리들이 거리에 모여 세 대결을 펼치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꿈틀거림을 보여준 것은 좋았는데, 그들의 주장이나 행태는 논리나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꼭 그대로 패거리 감정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내 편은 똥이 묻어도 향기가 나고 네 편은 겨만 묻어도 악취가 진동하는도다!

정치적 무관심이 우리의 진정한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준 일이었다. 오히려 정치 참여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떤 정치 참여인지가 문제였다. 과연 그것이 교과서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정치 참여였을까? 아니다. 많은 부분 법적인 문제를 불필요하게 정치화시킨 나쁜 종류의 정치 참여였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말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과 흡사하다. 거짓말이 왜 나쁜가?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고 어찌 살 수 있는가? 안 예뻐도 예쁘다고 말해야 아내에게 밥을 얻어먹고 아파도 안 아프다고 말해야 부모님을 안심시킨다. 거짓말은 필요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무관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정치 패거리들의 허튼 짓거리를 몰라야 개개인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매체들은 그들의 싸움박질을 우리 귀에 확성기를 대듯이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거짓말만 할 수는 없고 참말도 해야 하듯이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도 있고 관심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정치 참여도 정도 나름이고 방식 나름이다. 교과서만으로는 공부할 수 없다. 참고서도 있어야 하고 문제집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송파구청장의 이름은 몰라도 된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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