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들을 울고 웃게 만든 그 이름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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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들을 울고 웃게 만든 그 이름 ‘술’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5.22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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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알코올과 작가들: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 열전 | 그렉 클라크·몬티 보챔프 지음 | 이재욱 옮김 | 을유문화사 | 192쪽
 

술은 인류의 역사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원료나 제조 방식에 차이를 보이며 다양한 종류로 분화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게 주종이 인간의 취향과 더불어 세분화하는 사이에, 술은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술의 종류에 따른 개개인의 호불호가 숱한 일화를 낳은 것은 물론이다.

이 책은 여덟 가지 술에 얽힌 역사와 문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의 기원과 역사를 훑고 작가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 술에 역사적 가치와 문학적 의미를 더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술과 문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술은 우리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닌 다채롭고 깊이 있는 문화로 자리하게 된다.

책의 구성은 술의 종류에 따라 총 8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들이 미국인으로서 가진 시각과 경험이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양 술이 주를 이룬다. 와인, 맥주, 위스키, 진,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테킬라, 럼이 각 장의 주제다. 저자들은 주제와 소재에 걸맞은 다양한 삽화를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각 장의 이야기는 술의 기원과 역사로 시작한다. 저자들은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술이 탄생한 배경을 탐색하고 간략한 역사를 훑는다. 기원전 1200년경 지중해를 가로질러 전해진 와인, 기원전 2700년경 수메르 시에서 이야기된 맥주, 기원전 1000년경 메소아메리카 문화에서 비롯한 메스칼 등 저자의 탐구 범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 알코올과 작가들

이어서 저자들은 유명 작가와 술에 얽힌 사실과 에피소드를 다채롭게 소개한다. 작품들에 와인을 수시로 등장시킨 셰익스피어, 누구보다 스카치위스키를 사랑했던 마크 트웨인, 술을 많이 마셨지만 금방 취하곤 했던 피츠제럴드 등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이야깃주머니를 풀어 놓는다. 그 과정에서 압생트를 통해 마음을 나눈 랭보와 베를렌, 위스키에 기대어 무너진 그레이스 메탈리어스, 폭음과 절주로 갈등한 레이먼드 카버 등 익숙한 이름들의 기막힌 사연을 몇 페이지에 걸쳐 집중 조명하기도 한다. 특히 술에 관한 이야기에서 상징적인 문인으로 꼽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경우 거의 모든 장에 모습을 드러내 ‘잡주가’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바로 작품 이야기다. 저자들은 작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명작을 끄집어내 독자와 공유한다. 소설, 시, 수필 등 여러 작품에서 직접 인용된 문구들이 ‘책 속의 책’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맥베스』(셰익스피어), 『파리는 날마다 축제』(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피츠제럴드), 『악령』(도스토옙스키), 『호밀빵 햄 샌드위치』(찰스 부코스키) 등 ‘문학 전집’을 방불케 하는 작품 목록은 이 책만이 갖는 매력이다.

Ⓒ 알코올과 작가들
Ⓒ 알코올과 작가들

참고로 본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알코올 제조법은 이 책의 감초 역할을 한다. 저자들은 위스키 사워, 진 마티니, 스크루드라이버, 마르가리타 등 보편적인 제조법은 물론 제인 오스틴의 전나무 맥주, 윌리엄 포크너의 민트 줄렙, 헤밍웨이의 블러디 메리 등 작가만의 노하우가 담긴 제조법까지 두루 소개한다. 술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제조법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인들에게선 사람 냄새가 무척 짙게 난다. 문단의 평가만으로는 초월적인 이상향처럼 보이던 문호들이 어느 순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사람처럼 다가온다. 술을 통해 바라고자 했던 정서적 지향점을 달랐을지 모르지만, 험난한 삶을 헤쳐 나갈 지지대로 술을 택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거울상처럼 느껴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현실과 더불어 술의 세상을 함께 유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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