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서당-수도원-모스크의 공통점은 바로 ‘도서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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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서당-수도원-모스크의 공통점은 바로 ‘도서관’ 역할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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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 서평_『도서관 지식문화사 (세상 모든 지식의 자리, 6000년의 시간을 걷다)』(윤희윤, 동아시아, 2019.10.30.)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삶의 전 영역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중 필자가 가장 불편했던 건 바로 도서관이다. 이제야 도서관들이 기지개를 켜고, 하나 둘씩 다시 문을 열고 있다. 부디, 코로나19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어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하면 좋겠다. 전 세계의 도서관은 과연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도서관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역사를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 윤희윤 교수는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서 그동안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등 도서관 관련 여러 역할을 수행해왔다. 윤 교수가 밝혔듯이, 도서관은 이슬람 제국에 의해 ‘지혜의 집(바이트 알 히크마)’으로, 이집트의 람세스 2세에 의해 ‘영혼의 치유소’ 등으로 불렸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이다. 저자 윤희윤 교수는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죽간목독 등에 새겨진 문자들이 어떻게 기록되고 보존되었는지 6,000년의 역사를 살핀다.

“공공도서관은 지식과 문화가 결합되고 만남과 소통이 강조되는 생활공간이자 ‘중층적 공공성’을 대표한다.”-9쪽.
“책은 지식과 기록에 대한 역사적 증거이자 기호학의 총체이며, 도서관은 삶의 동반자인 동시에 지식문화의 주춧돌이다.”-10쪽.

인류는 기원전 4000년경 문자를 개발했고, 기록할 매체 즉 책을 만들어냈다. 이제 책을 보존할 서고가 필요했는데, 고대 문명에서 서고는 항아리였고 도서관은 바로 동굴이었다. 제일 처음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도서관은 아슈르바니팔 왕립도서관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엿볼 수 있는 이 도서관엔 설형문자로 기록된 점토판 문서와 파편이 3만 점 넘게 발굴되었다고 한다. 특히 바빌로니아 또는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관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시>와 <길가메시 서사시>가 보관돼 있었다. 서사시를 통해 그 당시의 인간들 역시 영생을 꿈꿨던 것을 알 수 있는데, 모험을 통해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치자들은 언제나 지식을 권위 세우기에 이용했다. 이집트를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15세는 아리스토텔레스 도서관(리케이온)을 모델로 한 무세이온을 건립했다. 무세이온의 부속 건물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본관인 부루치움과 분관인 세라피움을 두었다. 윤희윤 교수에 따르면, 부루치움은 현대 대학도서관의 원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역사 속 전쟁으로 인해 전설로 남았다.

중층적 공공성을 띤 기호학의 총체로서 도서관   

책에는 고대 도서관인 판타이누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켈수스 도서관,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도서관 등의 유적, 규모, 역사와 역할, 시대적 배경 등이 상세히 서술돼 있다. 심지어 도서관 개방시간과 입장료까지 구체적이다. 다만, 아쉽게도 대부분 자연재해나 전쟁, 제국의 몰락 등으로 사라졌다.

고대 동아시아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사기>에 따르면, 도가의 창시자 노자는 중국 최초의 도서관장이었다. 1904년 중국은 '도서관'이란 명칭을 후난 및 후베이 지방 공공도서관에 최초로 도입했다. '도서관'은 일본에서 1896년 만든 단어다. 중국은 왕실도서관 외에 개인문고인 장서루가 대학자나 명문가 중심으로 건립됐다.

우리나라는 신라 때까지 왕실문고나 왕궁도서관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시대에 본격적으로 각종 교육기관과 도서관의 전신인 문고가 설치된다. 예를 들어 ▶ 왕실문고 ▶ 관영문고 ▶ 교육문고 ▶ 사찰문고 ▶ 개인문고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 교서감, 교서관, 전교서 ▲ 예문관, 춘추관 ▲ 집현전(왕실도서관) ▲ 승문원(여러 조칙詔勅과 외교 문서를 관장하던 문서관) ▲ 홍문관 ▲ 존경각(성균관 부설로 현재 대학도서관에 해당) ▲ 규장각이 있었다. 그밖에 조선 시대의 서원이나 향교, 서당은 교육과 도서관 기능을 함께 했다. 서원이라 하면 이황의 도산서원(1574)이 대표적이다.

왕실문고와 도서관이 기록하는 역사

『도서관 지식문화사』가 의미 있는 건 일반적으로 잘 주목하지 않는 동아시아권 도서관들과 중세 시대 유럽의 수도원과 부속도서관이나 이슬람 문명의 도서관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모스크는 무슬림을 위한 예배장소인데, 이곳에 도서관이 설치돼 『쿠란』등 학술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모스크는 지리적으로 구분하면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근동(近東. 유럽과 가까운 서아시아 지역)으로 나뉜다. 스페인엔 알 하캄 2세(재위 961∼976) 통치 때 융성한 코르도바 모스크가 있다. 이곳에 부설한 코르도바 대도서관은 40만 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있었다. 장서 수로 보자면 프랑스 모든 도서관의 장서보다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중세 북아프리카엔 알 카라위인 모스크 내 부속 도서관인 아부 유수프 도서관, 아부 이난 도서관, 만수리야 도서관 등이 있었다. 이 도서관들에선 희귀서와 귀중본을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근동엔 터키 최대 사본도서관인 슐레이마니예 도서관이 있는데, 현재까지 10만 권의 필사본과 인쇄본 5만 권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시대 불교 사찰이 모스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팔만대장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의 위대한 지식문화 유산이다. 이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장경판전(국보 제52호)이다. 1488년 완공된 장경판전은 사찰도서관이고 보존서고로서 중세 대수도원이나 대모스크 부속 도서관에 필적한다. 특히 장경판전은 구조상 팔만대장경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는 과학적 설계에 의해 건립되었다.

“10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많은 목판 대장경이 제작되었으나 경판을 포함한 대장경 전체가 온전히 보존된 것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127쪽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대식 공공도서관의 등장

우리가 알고 있고, 이따가 내가 들르기도 할 공공도서관은 과연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그건 바로 1833년 미국 뉴햄프셔주에 설립한 피터버러 타운 도서관이라고 한다. 무료로 공적인 역할을 하는 공공도서관은 그동안 지배 계급이나 식자층에 의해 독점되던 지식을 만인에 공개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진리나 지혜는 언제나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도서관 지식문화사』에는 15세기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해 촉발된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과 공공도서관의 등장이 유럽과 영미권, 동아시아권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우리나라에선 1906년 3월 평양에 대동서관을 개관하며 신간 1만 여권을 갖췄다. 대동서관은 최초의 사립 공공도서관으로서 활발히 운영했다. 하지만 한일병합으로 폐관되었다. 국내에서도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한도서관’이나 ‘한국도서관’을 건립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저자 윤희윤 교수는 7장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438쪽)에서 “책은 문자와 매체가 결합되어 집합적 기억과 집단적 지성을 대변한다”면서 “책은 지식과 지혜의 컨테이너인 동시에 인격을 부여받은 생명체다”라고 적었다. 지식문화의 뿌리인 책을 빌려주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아울러, 윤 교수는 “책과 독서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진 유일한 사회적 장소가 도서관이다”라며 “책에는 인류의 지식문화사, 나아가 장구한 문명사가 함축되어 있다. 그렇기에 도서관은 책의 무덤이 아니며, 수장고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밝혔다.(441쪽)

특히 공공도서관은 △ 민주주의의 상징 △ 시민의 대학 △ 삶의 쉼터이자 미래의 희망 △ 지역사회의 랜드마크 △ 문명사회를 가늠하는 잣대 △ 지식과 문화가 춤추는 사회적 장소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모든 도서관은 지식정보와 지역주민에 기대어 발전과 변용을 거듭하는 유기체”라면서 “책 중심의 지식정보 개발에 주력해야 지식문화의 타임캡슐과 지적 놀이터로서의 구심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444쪽)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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