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성 ‘코로나이후 뉴노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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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 ‘코로나이후 뉴노멀’ 담론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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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규용의 행림방담(杏林放談)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는 요즘,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내용과 폭과 깊이에 대한 기술적, 경제적 측면의 추측과 대책들이 국내외 모든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세계화가 위축되면서 무역장벽과 자국우선주의가 일어날 것이고, 기술적으로는 디지털화, 언택트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뉴노멀이라 하여 이미 불가역적인 단계로 들어섰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대통령의 취임3주년 기자회견도 동일한 취지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물론 모든 사람과 국가들이 향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개인보안을 강화하려 한다는 추세예측에서 비롯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래도 성공적인 방역 덕분에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면서 서서히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방역이 국제 표준이 되었다는 대통령의 선언에서 느끼는 것은 선도국가로서의 막중한 책임이다. 의료기술과 국제자유무역의 선도, 경제동력 창출과 공정분배라는 모순적이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들을 코로나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코로나이후’ ‘뉴노멀’이라는 담론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한 달 남짓 전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급격히 늘어난 논설들이 거의 예외 없이 변화될 상황을 예측하고 있지만, 사실 ‘코로나 이후’는 어떤 모양으로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사태이며,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내리게 될 결정들이 상황을 만들 것이다.

팬데믹은 유사 이래 번번이 인류를 괴롭혀왔다. 바이러스는 오랜 세대를 거치며 인체를 왕래하면서 면역계를 변화시켜 왔고 지금의 면역 환경을 형성시켰다. 이런 대규모감염 과정을 극복하며 살아온 자체가 인체사이고, 그 속에서 인간은 자유와 평등, 기술, 도덕, 철학, 종교, 문화를 만들며 단련되어왔다. 그런데 이번 유행에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의료사태에 대해 의학적 지식권력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 ‘격리’와 ‘집단면역’의 다른 선택이 있었듯이 의학지식은 선택적이고 이념적이며, 언제나 옳거나 틀리지도 않다. 그 이유는 감염의 진전과정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고, 매 단계마다 주도적인 요소나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인 개인의 삶은 감염보다 훨씬 중대하기에 정치경제적 현황분석을 통해 정책을 검토하고 의학적 견해와 절충하여 주도면밀하게 대책이 결정되어야 한다.

필자는 대학에 있으므로 여기에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대학은 한 도시 혹은 생활권역 안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이 매우 커서, 개강 여부는 부근의 중소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타격이 큰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부업이 필요한 학생이다. 반면에 학생들의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정책적 요구에 대한 수용 및 실행능력은 전 계층을 통틀어 가장 높을 것이며, 동시에 감염에 대한 면역방어기제도 가장 잘 작동할 것이다. 게다가 등록금 반환문제에 대한 당국의 불개입정책 혹은 묵비권 행사는 매우 무책임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본안은 교육의 문제이다. 필자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느끼기에 대면교육에 비해 많은 한계를 느낀다. 학생들은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자세를 느슨하게 할 수 있다. 현재 실습교육은 11일부터 대면교육이 시행된다고 하는데, 이론교육은 아직 예정이 없다. 형식적인 출석확인 과제, 토론실종 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대학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학습경험이 걱정된다.

대학교육의 목적은 자유롭고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첫째일 것이다. 만일 전공지식을 전달하는 것일 뿐이라면 그래도 노력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난 3월 15일자 기고에서 다룬 것처럼,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확인한 사실은 인간의 무한 욕망추구와 역병, 지구환경과 인간활동의 상관관계, 사회공동체를 위한 상호배려와 연대의 가치, 정직한 삶의 방식 등에 대해 확인하고 반추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시민적 교양의 덕목에 속하는 것들이다.

더구나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우리는 유행의 책임에 대한 희생양을 찾는 마녀사냥, 심지어 명확한 혐의자에 대한 비난도 허용할 만한 수준에서 자제되었다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다. 이런 화살돌리기는 그 자체가 정치적 기술이기도 하다 보니 과거 세계사에서 계속 반복되었고, 우리의 지난 2000년 이후 경험에 비춰보아도 역시 그러하다. 이런 변화에는 나름 성공적인 방역성과와 해외로부터의 칭찬여론도 있었겠지만 촛불혁명 경험을 통하여 형성된 사회 전체의 높아진 공동체 참여의식, 즉 민주시민역량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필연적으로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격언은 영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통신・가상・네트워크가 일상화되면서 개인이 고립되는 세상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가치는 인간의 사회적 공존과 연대 및 공동체의식이다. 그리고 대학교육은 이러한 시민양성기능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의식은 강의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분위기와 경험과 습관으로 형성된다. 그렇기에 적어도 대학은 역학적 단계가 상당히 완화된 시점이니만큼 대면강의로 전환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구체적인 예방법과 대책을 마련하여 준수한다면 집단면역 등을 포함하여 실익이 훨씬 클 것이다.

골목시장과 대형마트 등에서의 생활상권과 일반적인 기업활동 재개 등의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하루바삐 복귀하는 것이 정부의 최대희망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감염의 재확산이 걱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바이러스학과 면역학의 의학적 프레임, 질병과 인간의 선결문제 결정, 혹은 사회변화추세를 이용한 기술개발 대(對) 바람직한 사회와 환경을 위한 정책 구조화 등의 가치선택이 폭넓게 관여되어 있다. 여기서 질병은 확진자 수의 증가이고 인간은 반드시 경제활동을 해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원방법도 또한 세련될 필요가 있다. 보통의 시민이라면 세금으로 받는 불로소득을 원하지 않으며 합의에 의한 것이라도 불편하다.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장기적으로 해악이 크다.

경제적 부에 의한 선진국의 초라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세계적 선도국가가 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 취하여 단순히 K-방역과 K-bio 등의 기술적인 전략에 그친다면 이는 자본력에 의해 금방 역전될 수 있다. 오히려 오랜 기간 방역지침 준수뿐만 아니라 ‘거리두기’ 와중에도 높은 선거참여율을 보여준 국민들의 민주적 시민역량을 발판으로, 학교・직장・시장・지역 등의 연령대・특성별로 세밀하게 방역대책을 준비하고 아울러 유사시 가용의료자원을 확대하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지구생태학적 해법을 찾아 인류의 정치도덕적 역량을 촉구하고 제고한다면 막 피어난 한류문화 역량과 함께 한층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지구・사회・생명・질병 등의 복잡계들이 복합적으로 모순되게 얽혀있는 문제에서 단순하게 찾을 수 있는 해답은 없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의 삶 자체가 영원회귀의 과정이라는데 국가의 운명과 세계질서도 마찬가지다. 매순간 고통스럽지만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과 공동선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국내외의 협조와 연대를 통하여 각 영역별로 세밀하게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복원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중심정책과 기술선도, 지구생태 공동체 이념을 주도하여 우리의 ‘노멀’을 만들고 세계 선도국가로서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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