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yourself’가 뮤지컬로 특히 지속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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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yourself’가 뮤지컬로 특히 지속되는 이유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05.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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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 뮤지컬 차미_고대와 미호
▲ 뮤지컬 차미_고대와 미호

뮤지컬 <차미>가 2017, 2019년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치고 2020년 4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정식 오픈되었다(작/작사 조민형, 작곡 최슬기, 연출 박소영, 2020년 4월 14일~7월 5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차미>는 우란문화재단의 ‘시야 플랫폼: 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인큐베이팅되고 발전해온 탓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뮤지컬 장르 자체를 심화시키면서 일종의 작가정신을 만들어온 프로그램이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정식 공연이 PAGE1의 제작과 이지나 연출의 프로듀싱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공연의 사전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국내 시스템 안에서 상업 무대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시작부터 착실하게 밟아온 것이다.

<차미>는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 우리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SNS(인스타그램이다) 속 자신과 실재(實在)하는 자신 사이에서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차미>는, ‘지금 그대로의 자신’이 진정 가치 있는 존재임을 발랄하고 유쾌하게 알려준다. SNS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 가공의 것으로 ‘전시’되는 삶 대신, 불완전한 자신일지라도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한데 어우러져 완전히 일상화된 동시대 현실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 뮤지컬 차미
▲ 뮤지컬 차미

그런데 궁금해진다. <차미>의 이 메시지는 뮤지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자기다움’에 대한 것이다. ‘니 자신이 되어라(Be yourself)’의 정신이다. 롤라의 성적취향과 그로 인한 삶의 굴곡들에 대한 이야기(<킹키부츠>)에서부터 원고를 끌어안고 살아낸 호프의 이야기(<호프>)까지 뮤지컬은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해왔다. 동성애자들이 뮤지컬에서 자주 다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다움’을 찾고 그 길 위에서 살아나간다는 결론이다. 작품이 파국으로 떨어지든 해피엔딩이든 마찬가지다.

사실 <차미>는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의 동어반복적인 프레임 안에 놓여 있다. 심지어 주인공 ‘차미호’가 영악하지도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착하고 의심 없는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은 계몽성을 전제하고 있기까지 하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미호가 자신이 만든 SNS 속 가상의 존재 차미와 마주하면서 결국 본연의 가치를 인정하고 찾을 것이라는 결말은, 따라서 처음부터 쉽게 예상된다. 착하고 순진하고 남을 의심하지 않는 귀여운 차미호의 승리다. 예쁘고 근사하고 능력이 많은 가공의 존재 ‘차미’ 대신 평범하지만 진실한 차미호의 승리는, ‘자기다움’은 사실 멀리 있지 않다는 힐링 포인트까지 선사한다.

▲ 뮤지컬 차미
▲ 뮤지컬 차미

만약 <차미>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작품은 기존의 것들을 반복하기만 했을 것이다. <차미>의 미덕은 작품의 길이 새롭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색다른 것’을 모색하려 했다는 점에서 만들어진다. 가공의 인물을 캐릭터화하여 차미와 오진혁이라는 인물을 만들고 이들의 가상성을 구현하기 위해 연기와 노래 스타일을 완전한 B급으로 구체화한 점, 가공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들을 만화적으로 ‘대결’하게 만든 점, 그리고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갈등을 구체화하면서도 옹고집전, 레디 메이드 인생 등의 한국적 소재를 결정적으로 이용한 점들이 그렇다. 특히 차미호의 욕망인 ‘차미’와 구천을 떠도는 1990년대적 가상의 존재 ‘오진혁’이 실제 인물들과 대결을 벌이다 패배하는 과정, 그 결과로 가상의 존재들이 현실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은 <차미>가 <차미>일 수 있는 핵심이다. 일견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표현 방식을 메타 뮤지컬적 요소를 적극 차용하여 객석과의 소통을 최대치로 끌어올림으로써 객석과의 밀도를 조절하려고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실제로 차미호의 옆을 지키는 김고대와의 관계를 통해 취업 전쟁을 겪고 있는 20대의 고민을 담아냄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미>로부터 참신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색다른 것’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새롭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극 안팎으로 여러 전제들을 만들며 B급을 구현하는 방식은 <난쟁이들>을 연상시키는 점이 있으며, 가상의 인물이 현실로 흡수되는 과정은 논리가 부족한 대신 극의 전제들을 건너뛰는 감정과잉으로 치닫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유연하고 여러 음악장르에 대한 소화력이 높은 배우 서경수가 오진혁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심각한 병증 후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 배우 최성원이 김고대의 설득력을 높여도, 결말이 예상되는 동어반복적인 테마가 결론적으로 부각된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 뮤지컬 차미_진혁
▲ 뮤지컬 차미_진혁

뮤지컬에서 ‘Be yourself’는 영원한 테마일까? 특히 창작 뮤지컬의 관심이 거대한 기성의 세계로부터 개별적인 것을 통한 보편적 가치의 구현으로 상당 부분 전환된 이후 이 테마가 반복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뮤지컬의 정서적 울림은 설득력이 높다는 반증이 아닐까. 만약 이것이 관객의 취향에 정향된 선택이라면 분명 경계할 일이지만 말이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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