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일 - 신령스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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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일 - 신령스런 풍경
  •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 승인 2020.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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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이야기]

이강일은 자신의 거주지인 당진의 풍경과 그곳의 유적지 내지는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또한 우리 그림에 늘상 등장하는 소나무나 바위를 그리는가 하면 조선시대 민화나 꼭두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번안해내고 있다. 그 모든 대상들은 그이의 개성으로 가득한 조형적인 번역에 의해 환생한다.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 이미지이자 자연 풍경이며 그것들이 거느린 모든 것들이 엉켜서 꿈틀거린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들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며 그것들은 색채와 붓질(선)로 하나가 되어 있다. 기존의 이미지들이자 사진이나 도판에 의지해 그려진 그림은 그 대상 안에서 작가의 안목에 의해 포착된 특별한 조형의 체계이자 숨길 수 없는 우리 조상들의 그 천진하고 따뜻한 마음의 공력으로 빚어낸 선이나 색채가 지닌 극진함에 대한 찬사와도 같다. 따라서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다시 보게 되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회화로 환생했을 때의 매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이강일의 그림은 자신의 감각으로 길어 올린 모든 대상에서 빛나는 조형의 아름다움과 나름의 엄정한 법칙들을 발견하고 이를 다시 온전하게 구현하는 작업인 듯하다.

▲ 이강일
▲ 이강일

이강일의 그림에는 한국인의 조상들이 추구하고 기원했던 애잔한 마음의 자리와 그 결과물로서의 미감이 호출되어 있다. 작가는 그 편린을 당진의 유적지와 사당과 사찰, 민화와 꼭두, 그리고 우리 자연에 산개한 소나무와 바위 등에서 수습한다.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건져 올린다. 사실 그 대상들은 한국의 전형적인 자연풍경과 그 안에 안온하게 자리한 인공의 건축물, 종교적 도상, 서민들의 기복신앙을 반영하는 그림과 죽은 이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꼭두 등인데 이 모두는 한국인의 정서와 미의식, 세계관을 진솔하고 소박하게 반영하는 매개들이다. 따라서 작가가 그러한 소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다분히 한국의 기층문화와 생사관, 전통적인 미감 등을 조형화하는 데 관심이 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이강일 그림에서 그 같은 소재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의 표현기법이 주목된다. 더없이 회화적인 맛으로 넘치는 그림이다.  
 
한지, 장지에 안료를 사용해 그린 그림은 몇 번의 활력적이고 생동하는 붓질이 분방하면서도 단호하다. 동양화와 서양화, 프레스코화의 특징들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고 한국 전통회화와 현대미술의 조형성이 맞물려 있다. 전통적인 서화에서 엿보는 모필의 탄력적인 맛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포착된 선들이 외형의 윤곽과 특정 대상의 내부를 감싸고 있다. 형상과 배경의 구분도 지워지고 원근이나 소실점을 대신해 전통적인 동양화의 시방식이 고지도처럼 전개되거나 민화에서 엿보이는 천진함과 해학적인 시선과 화면 구성이 교차한다. 무심하고 어눌해 보이면서도 활력적인 기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붓질과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듬은 도상화의 능력, 그리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의 병치, 마치 후광처럼 화면에서 중심이 되는 대상의 테두리에서 번져 나오는 듯한 흰색 물감의 처리, 화면 곳곳에서 꿈틀거리며 번지는 기운을 가시화하는 붓질 등이 주목되는 요소들이다. 특히 이강일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의 하나가 이 흰색(白色)의 구사다. 그것은 환하고 눈부신 밝은 빛을 방사하고 신성스러운 기운, 이른바 영기적인 것을 뿜어내는 한편 특정 대상, 존재를 감싸고 돌면서 돋보이게 한다. 또한 형상과 배경의 관계를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녹여내고 있다. 따라서 그림은 전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급박하고 순발력 있는 붓질/색채로 그려낸 대상들은 그만큼 생생하고 활기차다. 의도적인 작업의 개념이나 무거운 주제, 작위성을 거느린 방법론을 거두어들이고 자신이 본 것의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가능한 논리적으로, 타당한 조형 법칙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선과 색채를 이용해 자신의 감각을 표현해내는 그림이다. 보이는 것의 핵심을 간파하고 가능한 논리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본 세잔이나 우리 산하의 진경을 포착하고자 그것을 그림이라는 구성체계안에, 별도의 세계 안에 옴팡지게 위치시킨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부터 연유하는 조형감각의 영향 등이 짙어 보인다. 선과 색채, 붓질의 방법론은 이강일 그림의 도드라진 표식이다. 그것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그대로 육박해서 그것이 지닌 핵심으로 들어가려는 선이고 붓질, 색채다. 형상과 배경은 다양한 색채 속에서 붙어 있다. 그 색들은 배경이자 동시에 대상의 윤곽과 배경 사이에서 진동하며 자율적이기도 하고 공간을 채우는 비가시적인 요소들의 떨림을 동반한다. 예를 들어 소나무 줄기들이 뻗어나가면서 허공으로 직진하는 과정, 그 자연의 순리를 닮아 이를 추적해내고 있고 바위는 바위가 지닌 물성과 견고한 형태에 맞는 조형적 고려와 역원근법적인 시선 아래 돌올하게 위치시키고 있다.

▲ 이강일, 일월도, 종이에 안료, 2020
▲ 이강일, 일월도, 종이에 안료, 2020

그는 한국 자연과 전통미술 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인 소나무, 바위 등을 조형적으로 실험하고 있으며 그것을 회화의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그려보인다. 덧붙여 대상 자체가 지닌 생명력이나 구조의 법칙, 조형적 질서를 추출해내고 있는 그림이자 한국인의 미감과 조형의식, 생사관을 표출해내고 있는 민화의 특성을 힘껏 응용한 그림이다. 한국 자연에서 흔하게 접하는 소나무나 바위 및 기층 민중들이 제 힘껏 그려낸 민화나 꼭두의 투박하고 소박한 미감과 그 조형 원리 아래 숨 쉬고 있는 따뜻하고 착한 심성이나 굳건한 믿음의 정신들이 결국 그러한 이미지를 만든 뿌리였음도 지적하는 그는 바로 그 마음과 사상이 한국 미술의 특성이라고 본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조형의 보편적인 법칙이나 회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시분석, 미술비평, 큐레이터십, 이미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미술관의 비판적 고찰」 「한국 현대동양화에서의 그림과 문자의 관계」 등이,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 이사,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아트페어 평가위원,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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