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절’과 일본말 ‘데라’는 사촌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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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절’과 일본말 ‘데라’는 사촌지간이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5.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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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14)_우리말 ‘절’과 일본말 ‘데라’는 사촌지간이다

30여 년 전 여름 나는 남인도에 있었다. 인도의 선주민이던 드라비다족이 아리안족에 밀려 남하해 자리 잡은 곳이 그 일대였다. 그리고 그 곳의 중심, 주민의 대다수가 드라비다족인 따밀나두 주의 주도 마드라스(현재의 첸나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달마대사의 본향으로 알려진 깐치푸람이 있었다. 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본산인 소림사의 창건주로 알려져 있다. 인도왕자였던 그 이는 무슨 사연으로 이국 땅 중국에까지 와서 불법을 전하려 했을까? 9년 면벽 끝에 그가 깨우친 불법의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한창 호기심이 많던 시절이었다. 이미 몇 해 전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을 둘러보며 불교 초기 불당 또는 법당의 원형을 차이티야(chaitya)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塔이라는 말이 범어 stupa에서 왔다는 정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말 ‘절’의 어원을 궁금해 하던 터였다. 차이티야는 고대 인도에서 사당, 지성소, 사원, 예배당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 기원후 120년경 조성된 인도 카를라 석굴의 ‘대 차이티야’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haitya#Etymology
▲ 기원후 120년경 조성된 인도 카를라 석굴의 ‘대 차이티야’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haitya#Etymology
▲ 인도 아잔타 26호 차이티야 석굴
▲ 인도 아잔타 26호 차이티야 석굴
▲ 인도 엘로라 10호 석굴 내부의 塔身
▲ 인도 엘로라 10호 석굴 내부의 塔身

세상에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이 많다. 우리나라 축구팀이 전력이 약한 태국 팀에게 지는 것은 맹추 같은 일이다. 그리고 FIFA 순위가 우리보다 높은 일본에 지는 것은 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만약 지게 된다면 화가 나 밤잠을 설치는 이가 많다. 시합에서 이긴 날에는 승리감에 취해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삿대질을 하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연하다는 듯 허세를 부린다. 그 이유는 뭘까? 어떤 이는 지금의 우리가 외세를 끌어들여 허울 좋은 삼국통일을 한 신라의 후손이고, 일본의 지배세력은 나당연합군에 패해 망국의 한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의 후손들로 둘 사이는 필연적으로 원수관계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문화 교류나 전파 차원에서 보자면 한일 간의 관계가 그뿐일 리는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을사늑약에 이은 한일병탄 등의 사건은 결코 잊지 못할 민족적 비극이며 수치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철면피성 책임 회피와 오만함은 가증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위와 같은 일련의 사태로 양 편의 문화가 서로 다른 쪽의 문화로 흘러들어갔다.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일 것이다.
 
당연히 우리말 속에 일본말이 많이 들어왔고, 일본말 또한 우리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닮은꼴 어휘가 많다. 우리말 ‘해’는 일본어에 ‘히(ひ)’로 존재한다. ‘해’라는 말 외에 우리말에는 ‘수리’, ‘라’가 더 있고, 한자어로 ‘太陽’이 따로 있다. 일본인들은 태양을 ‘たいよう(taiyo)’라고 발음한다. ‘親舊’나 ‘朋友’를 우리는 ‘동무’라 했고, 일본사람들은 ‘도모(とも)’라 한다. 일본과 달리 우리에게는 ‘벗’이라는 멋진 말이 따로 있다. 이렇게 일본어와 우리말에는 닮은꼴이 많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말의 기원을 아는데 일본어를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 합천 해인사
▲ 합천 해인사
▲ 일본 東大寺
▲ 일본 東大寺

우리는 불교 사원을 ‘절’이라고 부른다. 승려가 살면서 불법을 공부하고 불도를 닦는 곳이라는 고대 인도말인 산스크리트어 saṃghārāma의 음역어인 ‘승가라마(僧伽羅摩)’와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인 ‘승가람(僧伽藍)’ 또는 ‘가람(伽藍)’을 써서 절을 지칭하기도 한다. 본디 “불교 수도원, 교단(敎團)”을 뜻하던 팔리어 sangha는 ‘승가(僧伽)’로 음역되어 쓰이는데, “비구(bhikkhus)와 비구니(bhikkhunis)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세 사람 이상의 화합된 무리라는 뜻에서 ‘중(衆, crowd)’이라고 의역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절’을 ‘데라’라고 한다. ‘절’과 ‘데라’는 사촌지간이다. 한 부모의 자식으로 분가해 사는 형제 관계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절’이라는 말은 인도 팔리어(Pali, 巴梨語) ‘thera’가 우리말에 유입되어 파생된 것으로 아래에서 보듯 ‘절’의 우리말 중세어는 ‘뎔’이었다. 그리고 중세 이후 구개음화가 진행되어 ‘뎔’이 ‘절’이 되었다.
 
뎔爲佛寺(訓正解例. 用字例).
城 밧긔 닐굽뎔 닐어(月釋 2:77).
僧伽藍ᄋᆞᆫ 뎌리니(月釋 21:39). 조ᄒᆞᆫ 뎘 通ᄒᆞᆫ 일후미라: 淨刹通稱也(楞解 7:57).
뎌레 가 노로ᄆᆞᆯ: 遊寺(杜解 2:14).
뎔 암: 庵. 뎔 ᄉᆞ: 寺, 뎔 찰: 刹(訓蒙中 10). 뎔 ᄉᆞ: 寺(類合上 18)(남광우편, 고어사전: 155)

한편 받침 없는 언어(CV Language)인 일본어에 들어간 ‘thera’는 ‘데라(てら)’로 전사되어,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구개음화와 같은 음운변화를 겪지 않고 여전히 본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지’가 아닌 ‘데라’로 읽히는 이름 난 일본 사찰 중에는 아스카데라(飛鳥寺, あすかでら), 다치바다데라(橘寺), 기요미즈데라(淸水寺), 다이마데라(當麻寺) 등이 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서는 절을 왓(wat)이라고 한다. 왓을 절 이름 앞에 붙이느냐 뒤에 붙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태국 사람들은 왓 아룬(Wat Arun, 새벽 사원), 캄보디아 사람들은 앙코르 왓(Angkor Wat)이라고 부른다. 

▲ 라다크 레 인근의 틱셰 곰파(승원)
▲ 인도 미낙시 암만(Meenakshi Amman) 사원
▲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
▲ 피렌체 두오모 성당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사원은 일반적으로 ‘temp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슬람 사원은 ‘mosque’, 예배를 위한 유대인 집회 혹은 유대교 회당은 ‘synagogue’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린다. 불교 사원도 티베트, 부탄, 라다크 등의 지역에서는 곰파(gompa)라고 불리는데, 이는 temple보다는 monastery(수도원)에 가깝다. 힌두교가 국교인 인도에서는 사원을 만디르(mandir)라고 한다. 그러나 드라비다 타밀족은 알라얌(Alayam)이라는 말을 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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