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코로나19 조언…방향은 맞으나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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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코로나19 조언…방향은 맞으나 지금은 아니다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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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칼럼]

#1. 어제 오랜만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다. 투표를 마치고 학술 모임이 있어서 미팅하러 가는 차였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내 옆의 사람이 마스크를 낀 채 기침을 하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조금 힘들어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마침 지하철역을 내려야 하는 차라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2. 모임이 끝나고 식당에 들어섰다. 종로의 유명한 골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휴일이어서 그런지 코로나19 때문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즈음 식당 주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우리 식당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이 얼마나 없었으면 감사의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씁쓸했다.

이제 정말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코로나19 이전의 그 활기참은 과연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왜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조금씩 감염되어 갈 때 정부의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킨 것은 맞는가? 코로나19 유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한 것은 아닌가?

▲ 유발 하라리

최근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유발 하라리 교수는 국내 방송국과 인터뷰에서 협력과 협동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인터뷰했다.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보 공유와 상호 신뢰의 국제적 연대만이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이다. 그는 인류의 최대 위협은 코로나19라기 보단 인간의 내면에 있는 욕심, 무지, 미움 등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 과학기술을 믿고 노력한다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라는 종이 생존하기 위해선 유발 하라리 교수의 조언이 응당 맞다. 그는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코로나19 이후’라는 글에서 “자율적이고 정보 수집에 능통한 군중들은 감시되는 무지한 군중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19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손 씻기는 수술실에서 수술이 끝나고 다른 수술을 할 때에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수시로 손을 씻고 있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무지, 욕심 그리고 미움

인류의 차원에서 보자면 유발 하라리 교수의 주장대로 더욱 협력하고 사실에 기반한 과학기술을 믿고 따라야 한다. 물론 그 사실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검증되며, 반증되는 정보들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언제 어디서나 그랬듯이, 인류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유행병이 된 원인은 바로 인간 스스로에게 있다는 게 문제다. 언제나 제국이 멸망했던 건 외부의 적(코로나19)이 제1 원인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과 이간질, 시기, 폭동 등 때문이었다.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코로나19처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인간의 의식은 매우 허약하다. 힘들수록 협동하고 단결하여 모이려는 의지는 오히려 코로나19의 확산을 키웠다. 종교 집회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은 심리학적으로 위험에 처할 때 사회적 거리보단 사회적 접촉을 추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건 일시적 일탈 현상이 아니다. 어떻게든 모여서 침을 튀기며 얘기를 나누고 행동을 취하려는 게 인간에게 내재한 본능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접촉으로 인해 인류는 이만큼 진보해왔다.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208만 명이고, 사망자는 13만 명이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시민들을 무지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류가 좀 더 협력하는 차원으로 나아기기 위해선 당분간은 좀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북한이나 중국의 상황을 빗대어, 언젠가 각 개별 시민들에 대한 감시가 도를 넘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나, 한국이 이만큼 대응하고 있는 것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강력한 제재 때문이었다. 격리 조치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금도 자가격리를 위반해 경찰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입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전 세계 사회·경제를 초토화시킨 건 코로나19 자체라기보단 바이러스 확산 방지 지침을 지키지 않은 인류의 실수 탓이다. 인류의 잘못이 제1 원인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 협력과 연대를 해왔지만, 딱 그만큼이나 살육과 정복을 멈추지 않았다. 회의주의에 빠지자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을 명확히 하여, 강력한 조치로 제때 막자는 것이다. 그래야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

▲ 유발 하라리
▲ 유발 하라리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의 대응 차이

유발 하라리 교수가 <타임>에 기고한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인류의 리더십이 부족하다’에서 밝혔듯이 단기적 관점에선 사회적 격리가 전 세계 유행병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단기적 차원의 사회적 격리가 오래 되다보면 글로벌 경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지적들이지만, 현 시점에서의 진단으로선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금은 단 하루만에 전 세계를 돌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바이러스가 금방 퍼진다.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등이 창궐했을 때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확산과 변이,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는 인간들의 행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시절에 과학적 정보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정보가 넘쳐난다. 그 당시에는 정보가 없어서 신에 의지하기 위해 모여들었으나, 지금은 정보가 충분함에도 지침을 어기고 모인다. 가짜 뉴스가 바이러스처럼 넘쳐나기 때문이며 어떤 때(일부 종교인들의 맹신)는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강력한 조치가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 안일한 대응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일본과 미국을 반면교사 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제언들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인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이다. 허나, 인류 역사와 미래를 과연 희망적으로 볼 수 있는지는 걱정이 든다. 아마도 인간성을 얼마나 믿는지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우려인 듯하다. 그는 <타임> 기고 글에서 “어느 한 국가에서 유행병이 확산하면, 전 인류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면서 “한 사람이 수십 조개의 바이러스 입자한테 숙주가 되면, 감염된 사람은 그 수십 조개의 바이러스 입자들이 인간에게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 된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들이 계속해서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를 여러 번 어기고, 주말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어기는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인류 역사와 미래는 과연 희망적일 수 있을까.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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