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넘어서는 복잡한 현실과 데이터 시각화
상태바
카메라를 넘어서는 복잡한 현실과 데이터 시각화
  • 김지훈 중앙대·영화미디어학
  • 승인 2020.04.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지훈의 '영화미디어학의 스크린'

코로나19의 전지구적 확산으로 제도적 영화제작과 영화관에 근거한 영화산업 및 영화문화의 순환계는 일시 정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봉쇄되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리적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에 따른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의 이용 증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독립영화 및 실험영화 배급사들이 영화관의 사회성을 가상적 연결성으로 대체하기 위해 온라인 상영관을 운영하면서 일정 주기별로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공개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증거의 수집과 기록의 생산이라는 차원이라면, 다큐멘터리 미디어 실천은 판데믹 속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전문가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활동은 어느 정도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장기간의 관찰 및 이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배우와의 상호작용에 근거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기까지는 적잖은 기다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촬영 장비로 코로나 19의 현실을 시민들이 목격하고 기록하거나 이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비로그(vlog) 양식의 영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도처에서 업로드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참여 문화가 제공하는 기록하기(documenting)의 실천이 다큐멘터리(documentary)에 대한 전문가적인 가정을 넘어서는 양상일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19의 영향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양식이 있다. 정보 시각화(information visualization) 또는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라 불리는 이 양식은 아마추어 시민들이 제작하고 업로드하는 온라인 비디오라는 기록을 보완한다. 온라인 비디오는 제작자 자신과 그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Life in Lockdown Wuhan>(Channel 4: https://www.youtube.com/watch?v=yyucJekT87E)는 한 우한 거주자가 봉쇄령 속 두 달 간의 일상을 기록한 비로그 포맷을 포용하여 이동 제한으로 인해 달라진 세계와 그 세계에 적응해 나가는 시민의 현실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구성한다. 이 거주자를 기록하는 영상과 더불어 거주자 스스로가 1인칭의 시점으로 자신과 주변을 기록한 영상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지우면서 ‘우리에게 삶을 보여줘(show us lif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의 기대를 충족한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달라진 영상에 대한 친밀한 증거적인 기록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영상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다. 코로나 19는 그 자체로 카메라의 응시를 벗어나는 비가시적인 주제이며, 바이러스의 광범위한 영향 또한 카메라의 기록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우리가 많이 참조하는 기록물은 이와 같은 기록영상뿐만이 아니라 실시간상황판(https://coronaboard.kr/), 존스홉킨스대학 코로나연구센터의 세계지도와 미국지도(https://coronavirus.jhu.edu/map.html)와 같은 것들이다.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이 정보 시각화 또는 데이터 시각화의 결과다.

<Life in Lockdown Wuhan>(Channel 4: https://www.youtube.com/watch?v=yyucJekT87E)는 한 우한 거주자가 봉쇄령 속 두 달 간의 일상을 기록한 비로그 포맷을 포용하여 이동 제한으로 인해 달라진 세계와 그 세계에 적응해 나가는 시민의 현실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구성한다.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유력 언론이 ‘데이터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섹션을 마련할 만큼 정보 시각화는 21세기에 보편화된 미디어 실천 양식이 되었다. 그런데 시각화가 세계에 대한 정보를 미적으로 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세계에 대한 지식과 가설을 구성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데이터 시각화의 역사는 디지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에 대한 과학적 관찰이나 가설을 시각적으로 예시한 사례는 근대적 지도제작술의 발달과 함께 생겨났다. 특히 인구와 인간에 대한 과학적, 행정적 통치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19세기에는 도표, 다이어그램, 커브 등 오늘날의 데이터 시각화에도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가시화의 문법이 활발하게 고안되고 적용되었다. 이와 같은 문법은 거대하거나 보이지 않는 규모의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수량화하는 경험주의적 방법론, 그러한 방법론으로 얻어진 데이터를 명징하고도 직관적인 도상으로 번역하는 추상화의 원리를 전제한 것이었다. 보는 것과 사유하는 것, 아는 것이 서로 연결되는 셈이다. 오늘날 데이터 시각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는 정치학자 에드워드 터프티(Edward Tufte)가 쓴 『아름다운 증거(Beautiful Evidence, 2006)』의 서문에 따르면 “과학과 예술은 집중적인 보기, 경험적 정보를 생성하는 폭넓은 관찰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책은 보기를 보여주기로 바꾸는 방식, 경험적 관찰이 설명과 증거로 변환되는 방식에 대한 책이다.” 이 말이 나타내듯 20세기의 정보 시각화는 과학적 진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모더니티의 인식론, 그리고 복잡한 현실이나 비가시적인 사실을 단순 명료한 형태로 환원하는 모더니즘의 미학이라는 두 축으로 구동되었다. 이와 같은 두 축으로 인해 정보 시각화는 카메라의 기록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광범위한 시공간적 규모의 현실이나 보편적 지식을 구성하는 설명적(expository)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의 담화를 보충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그렇다면 왜 21세기에 들어 많은 저널리즘 미디어가 데이터 시각화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양식을 왜 다큐멘터리 실천으로 고려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데이터 시각화는 비록 카메라로 기록한 증거로서의 이미지가 부재하더라도 카메라의 포착으로는 한계가 있는 현실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그 현실과 정보에 대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과 주장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마찬가지로 정보 시각화 또한 인식론과 권력, 윤리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관찰과 데이터 추출, 시각화의 일련의 실천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의 특정 부분을 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데이터 시각화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경합하는 두 개의 축인 현실과 허구, 기록하기와 표현하기의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데이터 시각화 또한 현실의 기록과 분석에 있어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월 22일자로 <뉴욕타임즈>에서 발간한 “How the Virus Got Out”(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03/22/world/coronavirus-spread.html)을 보자. 이 기사는 우한 지역의 시장에서 출발하여 중국 대륙 내부로의 인구 이동, 세계 곳곳으로의 인구 이동, 그리고 미국 지역 곳곳으로의 지역사회 감염에 이르는 바이러스 전파의 내러티브를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위상 변화와 미적으로 생생한 그래픽으로 구성한다. 점의 복잡한 증가로 표현되는 인구 이동의 양상은 바이러스의 비가시적 전파 경로와 통제 불가능성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각각의 점들이 바이러스 보균자와 전파자의 얼굴과 그들 각각의 삶이 가진 디테일을 전달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데이터 시각화는 카메라로 파악될 수 없는 바이러스의 전지구적인 흐름과 그 영향에 대한 지식을 미적인 대상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 <뉴욕타임즈>에서 발간한 “How the Virus Got Out”(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03/22/world/coronavirus-spread.html)

이 사례를 통해 21세기의 데이터 시각화가 20세기의 데이터 시각화와 구별되는 몇 가지 방식을 정리해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나 저널리즘 기사의 보충 자료로 남기를 넘어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의 수사학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 우선 명확하다. 또한 20세기의 데이터 시각화가 단순성과 환원의 원리에 근거한다면, 21세기의 데이터 시각화에는 복잡성의 논리 또한 추가된다. 미디어학자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지적하듯 단순화에 근거한 20세기 모더니즘과는 달리 21세기의 데이터 시각화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인해 “양적인 데이터가 패턴과 구조로 환원되고 이는 다시 많은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폭발한다.” 마지막으로 컴퓨터 그래픽의 생성적인 복잡성 원리가 적용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날 데이터 시각화가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몇 가지 주제를 살펴보면 인구와 교통 이동, 기후 변화와 인류세를 비롯한 환경 문제, 소셜 미디어에서의 데이터 흐름과 같은 것들이다. 즉 전통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져 온 사진적 이미지만으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복잡한 현실들, 가시성의 규모와 시야를 넘어서는 현실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시성은 물론 추론과 예측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데이터 시각화는 21세기 들어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범위는 물론 다큐멘터리가 가리키는 현실 자체의 범위에도 일어난 변화를 반영하는 다큐멘터리 실천 양식이다.


김지훈 중앙대·영화미디어학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저서로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 Hybrid Moving Images in the Post-media Age』(Bloomsbury, 2018/2016), 번역서로 『북해에서의 항해』(2017),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2005)가 있고 히토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 개정판(2018) 감수와 해제를 맡았다. 실험영화 및 비디오, 갤러리 영상 설치 작품, 디지털 영화 및 예술, 현대 영화이론 및 미디어연구 등에 대한 논문들을 , , , 등 다수의 국내 및 해외 저널에 발표했다. 현재 두 권의 저작 『Documentary's Expanded Fields: New Media, New Platforms, and the Documentary』와 『Post-verite Turns: Korean Documentary in the 21st Century』를 작업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