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전염병투쟁사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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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전염병투쟁사 브리핑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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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규용의 행림방담(杏林放談)

요즘 온 세상을 코로나바이러스가 독점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반전문가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의학과 별 관련 없는 SNS의 지인들이 퍼나르는 정보를 보면 30년 전 대학 미생물학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바이러스과학의 많은 발전을 실감한다. 반면에 한의학에서 바이러스를 포함한 전염병들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알려면 1800년 전부터 시작하여 400년과 300년 전 세 차례에 걸쳐 기존해법을 혁신했던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의학이 정립한 지식이 현대의 과학적 의학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자연히 분명해질 것이다.

체외환경-바이러스-체내환경 상호작용

한의학은 본래 천지라는 물리세계와 사회생활 환경 전체를 인간의 삶과 한 몸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감염성 질병은 물론이거니와 내과적인 질병이라도 환경과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고 본다. 질병이 비록 상호작용의 산물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치료의 주체는 인간이고 환경은 인간의 내외 상태를 변화시키는 조건이다. 사람이 춥거나 더워지면 옷을 입고 벗어 외환경을 바꾸듯이 몸내부에서도 피부를 여닫고 소변량을 증감하며 내환경을 조정한다. 이런 자연적 적응기제를 치료원리로 응용하여 1세기경에는 이미 처방법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의학지식이 생활경험과 생리현상을 추론하고 연역하여 치료이론에 통합하면서 성립되었다는 뜻이다.

그 예로 상한, 중풍, 백합, 중열 같은 다양한 병명이 있지만 진단이나 변증은 철저하게 실제 치료방법과 결부되는 한에서 이루어지고, 치료에 성공한 사례의 가설들만 남겨진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상한병 환자에 대한 치료경험을 통하여 3세기 초에 기본적인 치료이론과 운용방법을 갖춘 <상한론>이 등장하였다. 상한병학은 후한제국 말엽 전란기에 기근과 열악한 위생, 추위 등이 겹치면서 여러 종류의 혹독한 전염병들이 휘몰아쳤던 시기에 짱쭝징이 체계화한 것이다. 급성의 오한과 발열을 일으키는 감염성질환들을 상한병으로 규정하고, 발병과정을 세 개의 양병과 음병 6가지 범주 안에 초기증후패턴 및 인체부위별 병증양상을 결합한 공간정보와 태양-양명-소음 세 단계의 시간정보를 담아 치료처방과 함께 정리하였다. 이러한 시공간 정보는 현대적으로 보면 내환경조건의 차이에 따른 병소와 질병유형 및 감염병 진행의 초기-극성기-말기 분류에 해당한다. 또 처방 안에는 개인의 평소질환과 체질적 강약에 따라 약물과 용량을 증감하면서 응용하는 방법이 기재돼 있다.

▲ 장중경. 후한말 사람으로 상한론을 집필하여 탕약 효능 및 복용에 관해 쳬계적화 하였다.
▲ 장중경. 후한말 사람으로 <상한론>을 집필하여 탕약 효능 및 복용에 관해 쳬계적화 하였다.

상한과 온역과 온열

오한이 있은 후에 발열이 심해지고 두통, 뒷목 뻣뻣함, 전신 특히 등과 허리통증, 땀이 없어짐 등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고 병의 원인이 되는 무언가(邪氣)가 피부와 살의 겉 부분에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런데 땀이 나면 열이 내리고 통증도 사라지는 것을 보고 땀과 병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사람과 병의 차이에 따라 땀나는 양상이 어떻게 다르고 예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 각각을 치료할 수 있는 적당한 발한방법(perspiration)과 정도, 그것이 실패했을 때의 증상과 대처방법들을 기술한다. 치료방법도 단순한 약물처방뿐만 아니라 음식금기와 죽 등의 식이보조요법, 이불보온법 등의 여러 수단들을 병용하여 최적의 치료레시피와 조건을 완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전염병 의학지식은 1000년 정도 별 변화 없이 내려오다가 류완쑤에 이르러 부분적으로 수정증보된다. 그리고 이어서 400여년 후에는 우여우커에 의해 전염병에 대한 가설과 처방 및 병리전변이론이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온역치법이 새로 제안되었다. 첫째 당시 유행한 전염병 치료에 상한처방이 효과가 없었고, 둘째 처음부터 오한발열이 아주 심하고 악화속도가 빨라 상한병리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우며, 셋째 병위도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상한과는 도무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악랄하고 특이한 병(戾氣, 癘氣, 異氣)이라 붙였는데, 명백하게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독립적인 병원체를 상정한 것이다. 그리고 100년도 못되어 청나라 초기의 예궤이와 쉬에쉬에는 당대에 유행한 급성 감염병들에 대한 임상경험과 관찰을 통해 이들 두 가지 이론을 지양・종합하여 새로운 전변이론 및 치료방법과 뛰어난 처방들을 제시하였는데 <외감온열론>과 <습열론>에 남아있다.

이상이 한의학의 주요한 전염병학 발전과정인데, 이렇게 시대에 따라 이론과 처방이 달라진 이유는 기후조건의 차이와 농업기술과 경제발전으로 인한 의식주환경 변화가 중요한 인자이다. 이런 변화는 또한 질병 자체를 바꾸었는데, 한대엔 기후성의 인플루엔자, 명말엔 전염성 볼거리, 청초엔 반진・출혈성의 홍역・수두와 급성 뇌・폐・간・장염성 열병들이 유행하였다.

관찰범위와 현상과 실체

여기서 요점은 한의학의 감염병 대응전략이다. 바이러스 자체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환경에서 생겼는지, 몸의 평소 병증과 체질적 강약이 어떠한지, 병원체가 어느 부위에 붙어서 주요증후를 일으키는지, 사람에 따라 어떤 장기와 조직으로 병증이 발전하는지를 감별하는데 집중한다. 여기서 다시 바이러스의학과 비교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야생동물 유래와 캐리어, 염기서열 분석, 최근에는 국내에서 전사체정보를 발표하여 바이러스의 정체를 확립하였고, 손씻기와 마스크로 바이러스를 차단하라 홍보해왔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예방과 치료방법이 없고 증상이 생기면 음압병실에서 대증치료, 중증이 되면 에크모치료하는 것이 공식적인 치료과정인 듯하다. 환원주의 의학의 일관된 이론과 바이러스라는 실체에 집중한다는 학문적 선명성이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강도가 침입하여 사람이 다쳤는데 범인 ID확보에 신경 쓰느라 정작 다친 사람은 밴드 붙이고 독방에 격리해두는 식이라면 최선은 아니다. 더구나 이달 13일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에 의하면 COVID-19가 세 가지 유형의 변이를 일으키며 세계로 번졌다는데….

요약하면, 한의학이 변수관찰 범위를 인체의 내・외환경으로 확대하고 철저하게 전염병 현장의 환자에게서 얻어지는 정성적 지식이라면, 현대의학은 과거에 얻어진 바이러스를 분석하여 얻어지는 실체적 지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량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고 실효성을 실증성보다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한의학은 결국 비과학으로 평가된다. 통상 과학의 필수요소는 관찰과 가설 및 반복실험에 의한 확증과 객관성이라고 한다. 측정방법 및 해석체계 등의 편향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철학에서 논의가 많으니 거기에 맡기기로 하자. 문제는 관찰의 범위와 변수의 양이다. 관찰의 범위와 변수를 늘리면 현상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지만 이론화와 데이터화가 어렵고, 줄이면 반대의 결과가 생긴다. 그러므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양자를 병행하고 서로 보완해야 한다.

국가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결정하고 주어진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는 사회적 가치나 요구, 심지어는 정치적 역학관계가 관련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12월 10일 <Nature>에 이런 코멘트가 실렸다. 미생물학과 면역학전공인 저자들은 당시 에볼라대책이 바이러스에만 편중되는 것을 비판하며, 질병치료의 실마리를 바이러스에 노출되고도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찾을 것, 병원체-숙주 상호작용 변수에 대해 분석할 것을 강조하고, 편중 배경은 학계에서 변수를 미생물로 간주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 우세하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다.

전염병 유행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의 고통이지 바이러스가 아니며,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본능과 노력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의학은 역병현장의 수많은 임상진료데이터에 근거하여 다양하고 복합적인 질병의 변수들과 치료방법을 논리적 추론절차에 따라 통합하여 감염병이론을 만들고, 스스로 수정하며 실천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것이 과학의 본성(nature of science) 아닌가? 모쪼록 한의학이 축적한 전염병지식이 역병현장에 적용되고 획득된 정보가 다시 의약과학에 통합되는 선순환시스템을 갖추어 국민보건수준이 더욱 향상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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