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보다 공적인 합의의 정신이 필요하다, 앙상블 배우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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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다 공적인 합의의 정신이 필요하다, 앙상블 배우에게 박수를!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04.13 12: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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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전 국민의 프로듀서화’를 외쳤던 프로듀스101의 투표 조작 이슈에도 불구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시즌 1, 2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Jtbc의 <팬텀싱어> 시즌 3이 4월 10일에 시작됐고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며 최근 막을 내렸다. 이 사이에 뮤지컬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tvN의 <더블 캐스팅>이 8회까지 방송되며 결승전만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더블 캐스팅>은 그 사이에서 대중적인 확산을 크게 이루지 못하는 모양새다. 뮤지컬은 장르적인 속성상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잘 흡수될 것 같지만 뮤지컬을 단독 테마로 하여 진행했을 때 별반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또 다시 상기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방송됐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싱잉 인 더 스카이>(2008, 당시 공연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여주인공을 선발했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투입될 배우들을 뽑았던 <캐스팅 콜>(2018) 역시 다른 오디션에 비해 확산성이 크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먼저, 뮤지컬은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국내 뮤지컬은 스타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기 때문에 고정 팬층을 갖고 있는 아이돌을 제외하고 폭넓은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인이 주조연으로 발탁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발성 이벤트로 새로운 판이 형성되기 어려운 뮤지컬 시장에서 오디션 프로의 결과를 그대로 제작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제작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며, 이러한 이유로 신인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진화하는 뮤지컬 오디션 기획은 시작부터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뮤지컬 넘버로 오디션을 구성함으로써 해당 넘버를 아는 시청자와 그렇지 않은 시청자를 자연스레 구분 짓는 것은 확산성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이 된다. 뮤지컬은 마니악한 장르라는 불변의 진리 때문이다.

따라서 <더블 캐스팅>은 이러한 한계를 딛고 기획된 ‘착한 프로그램’이다. 더욱이 출전 자격을 ‘대극장 주조연이 아닌 앙상블 배우들만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1등에게는 대극장 뮤지컬 주연의 기회를 준다는 특전은 다분히 놀라운 것이었다. 킬러 콘텐츠를 생산한 tvN이 CJ ENM의 유료방송채널이라는 점, 따라서 CJ ENM의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 중 하나인 <베르테르>의 주연으로 발탁된다는 점은 앙상블 배우들에게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착한 기획’이었던 것이다. 3회 초반에 작품이 구체적으로 발표되고 심사위원인 배우 엄기준과 ‘더블 캐스팅’(혹은 트리플 혹은 쿼드러플)된다는 계획을 알게 된 (살아남은) 출전 배우들의 환호는 프로그램이 지렛대 삼아 전진할 수 있는 추동력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작부터 <더블 캐스팅>은 앙상블 배우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앙상블 배우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언젠가 찾아올 주조연 역할의 캐스팅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 있지만, 문제는 프로그램이 그들에 대한 감성적인 시선을 노골화함으로써 앙상블 배우들을 ‘불쌍한’ 뮤지컬계의 약자로 자리매김 해버렸다는 점이었다. 이 구도는 오디션에 출전한, 심사위원 차지연의 남편인 윤은채 장면에서 극점에 달했다. 아내는 뮤지컬계의 톱스타지만 남편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여전한 앙상블 배우라는 위치가 부각되고, 그런 남편을 공적인 자리에서 대면하기가 어려워 내내 눈물을 흘리며 심사를 포기하는 차지연의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출전한 배우들에 대한 어떤 구분 짓기가 명확히 감지되었다는 점이었다. 프로그램이 회를 거듭할수록 잠재력이 있어 주목되는 초심자들과 오랫동안 앙상블을 하면서 더 이상의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오래된 배우들 사이의 장벽이 점차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베르테르 연기가 가능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과 그렇지 않은 배우들 사이의 구분 또한 분명했다. 이 구분 짓기는 결국 뮤지컬 마니아를 중심으로 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출전 자격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는데 결승전만을 남겨둔 현재 시점에도 수그러들 조짐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앙상블 배우라고 말하기 어려운 일부 배우들에 대한 이슈에, “데뷔를 작은 배역으로 시작했거나, 소극장에서 멀티를 하고 있더라도 앙상블 역할이 경력의 다수라면 지원서를 받았다”는 제작진의 설명은 다소 궁색해 보인다.

사실 이 모든 논란은 다시 반복하지만, 앙상블 배우들을 향한 과도한 감성적 몰입에 근거한다. 이지나 연출을 제외하고 모두 출전 배우들과 작업을 해봤을 만한 톱스타 배우들로 심사위원을 꾸리고, 그들의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심사에 녹여내는 장면이 특히 초중반에 반복되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프로그램이 출전 배우가 향후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정확한 좌표를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앙상블’이라는 역할이 주조연으로 승격되기 위한 시험대가 아니라 자신의 몫을 하며 공연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공연계의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프로그램 안에 깃들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결승전으로 향하는 8회의 마지막 즈음, 준결승전의 관문을 뚫지 못한 6명의 배우들이 선사한 스페셜 무대의 감동이 그저 신파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또 다시 앙상블 배우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음악과 춤 때문’이고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Thank you for the Music’의 정신이 주연을 도와주는 앙상블 배우의 처우를 굳건하게 만드는 공연계의 정신으로 확장되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최후 1명의 승리가 더 값진 것이 될 수 있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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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수 2020-04-14 21:10:00
Thank you for the goo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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